ㆍ아이스하키 단일팀 막내 최유정·김희원·엄수연·이은지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최유정, 김희원, 엄수연, 이은지(왼쪽부터)가 24일 강릉 올림픽 파크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취재진의 인터뷰 직후 이날 ‘한국 선수의 밤’ 행사에 초대 가수로 나오는 비와이를 응원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에 그린 그림을 들어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릉 | 이석우 기자
여자 아이스하키가 남북 단일팀으로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긴장되고 겁났다. 그런데 한 달여의 여정을 마친 단일팀 선수들은 이제 이별이 아쉽다.
단일팀 막내로 북측 언니들의 사랑을 받았던 최유정(18)·이은지·엄수연·김희원(이상 17)은 지난 24일 강릉 올림픽파크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처음엔 ‘북측 언니들’이 무서웠지만, 이젠 곁에 없으면 그리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막내들은 단일팀이 성사된 순간부터 이별을 앞둔 지금까지 지나간 일들이 모두 꿈만 같다.
지난해 4월 강릉 세계선수권 남북 대결에선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그랬던 남북 선수들이 한 팀이 되자 뒤에서 눈을 가리고 “누구게?”라고 묻는 장난도 쳤다. 김희원은 “언니들이 수연이는 ‘깜찍하다’고 안아주고, 은지한테는 ‘재미지다’며 이뻐한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 선수 고혜인이 지난 24일 강릉 올림픽파크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여자 남북 단일팀에서 함께 뛴 35명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릉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막내들은 훈련 첫날부터 “한 팀이 됐다”고 말했지만 서로가 마음을 연 계기가 있었다. 첫 경기였던 지난 10일 스위스전이 끝난 뒤 선수들이 직접 북한 선수 김향미의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 생일 파티의 방점은 생일 노래에 찍혔다. “중요한 미팅”이라는 하얀 거짓말로 경기를 뛰지 않은 선수도 라커룸에 불러 모아 다 함께 북한식으로 생일 노래를 부른 것이다.
스위스전 0-8 참패에 실망했던 남북 선수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연 순간이다. 당시를 떠올린 막내들은 즉석에서 북한식 생일 노래를 불렀다. “축하합니다. 생일을. 기쁨 넘치는 생일을. 오랜 세월 행복한 생일. 노래 불러 축하합니다. 생일을 축하합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단일팀 공격수 조수지(24)는 “딱히 누가 아이디어를 낸 것은 아니다”라며 “그저 잘 챙겨주고 싶었고, 생일 노래가 다르길래 슬쩍 물어봐서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단일팀 사이에선 유쾌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세라 머리 단일팀 총감독이 경기력을 위해 ‘맥도날드 금지령’을 내린 것을 모른 일부 북한 선수들이 아침 식사 시간에 몰래 맥플러리(맥도날드 아이스크림)를 두 개씩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귀화 선수인 랜디 희수 그리핀은 그 용감한 행동에 동참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당시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참았던 막내들은 북측 언니들과의 또 다른 파격을 꿈꾼다.
북한 평양에서 직접 옥류관을 찾아가 진짜 ‘냉면’을 먹기로 약속했다. 일정을 마친 지난 21일 강릉의 한 고깃집에서 입가심으로 먹은 냉면에 실망한 뒤 동생들을 초청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사실 북한 선수들은 멸치국수를 원했지만 소면이 없었다. 김희원은 “언니들이 진짜 평양 냉면은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며 “(김)향미 언니도, (정)수현 언니도, (진)옥이 언니도, (김)은향 언니도 다 약속했다. 곱빼기로 사준다고”라고 말했다.
북측 언니들과 막내들의 냉면 약속은 이별을 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막내들이 “못 보면 어떡해”라고 하자 북측 언니들은 “그런 얘기는 나중에”라며 말을 돌렸다. 단일팀은 25일 폐회식이 끝나면 헤어진다.
머리 총감독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단일팀이 성사되려면 “지금부터 4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길을 열어놨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도 북측 선수들은 막내들의 단일팀 유니폼에 “다시 만나자”는 글귀를 써줬다. 막내들도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꼭 봤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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