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매스스타트 ‘은’ 관중에 큰절…경기 전 심리상담 ‘정신 집중’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딴 김보름이 지난 24일 열린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릉 | 이석우 기자
김보름(25)은 초등학교 5학년에 쇼트트랙을 처음 배웠다. 태권소녀에서 조금 늦게 스케이터로 변신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제법 잘 달렸지만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고교생이 되면서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고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을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는 “너무 늦었다”고 말렸다. 쇼트트랙 출신 이승훈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결심이 섰다.
타고난 스포츠 소녀가 이를 악물자 무섭게 성장했다. 곧바로 국가대표로 선발돼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일생일대 기회가 왔다. 스피드스케이팅에 쇼트트랙을 접목한 새 종목 매스스타트가 등장했다. 쇼트트랙 특성을 잘 알고 몸에 익힌 김보름은 월등했다. 2016~2017 월드컵 4개 대회에서는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시련도 인생을 걸고 도전해온 김보름을 막지 못했다. 19일 팀추월 경기를 마친 뒤 팀워크 논란의 중심에 선 김보름은 거의 전 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이틀 동안 방문을 걸어잠그고 틀어박혀 울었다.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김보름은 고통의 닷새를 이겨냈다. 정신을 집중했고 24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땄다.
경기 뒤 김보름은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반복되는 사과에 한 외신 기자가 손을 들고 “무엇에 대해 그렇게 계속 사과하는 것이냐”고 질문했다. 한국 취재진에게 간략한 사연을 전해들은 외신 기자는 “정신력이 엄청난 선수인 듯하다”고 감탄했다.
이날 경기장의 한국 팬들은 우려와 달리 김보름을 향해 시종일관 뜨거운 응원을 보내 그간의 노력을 지지해줬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코칭스태프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 김보름은 태극기를 들고 관중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고통스러웠던 노력을 은메달로 보상받은 감격의 눈물이자 비난 속에 한줄기 햇살처럼 내비친 격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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