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왼손 타자들도 그에게 꼼짝 못한다.

9년 연속 3할을 친 ‘타격의 달인’ 장성호(KIA)도, ‘기록의 사나이’ 양준혁(삼성)도 그만 만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왼손 타자에게 특히 강해 오랫동안 왼손 스페셜리스트로 군림했다. 올시즌도 피안타율은 2할6푼9리이지만 왼손 타자를 상대해서는 1할8푼9리로 꽁꽁 막았다.

두산 이혜천(29)은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야구 최고의 ‘왼손타자 킬러’다. 왼손 투수로 팔이 처져서 나오는 독특한 투구폼과 140㎞ 후반대의 빠른볼과 날카로운 슬라이더는 왼손타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무기다. 제구력이 다소 흔들리는 게 약점이지만 배짱 넘치는 투구가 폭발하면 누구보다 무섭다.

올시즌에는 중간계투와 선발을 오가며 다용도의 가치를 자랑하고 있다. 경기 운영능력이 좋아져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도 좋은 승부를 펼치고 있다. 후반기 들어서는 확실한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꿰차더니 김경문 감독은 그를 포스트시즌에도 선발로 쓰겠다고 신뢰를 보였다.

이젠 진정한 ‘멀티맨’으로 불려도 될 듯하다.

이혜천이 올시즌 최고의 투구로 팀의 연패를 끊고 2위 사수에 앞장섰다.

26일 잠실 삼성전에 선발로 나선 이혜천은 5.2이닝 동안 2안타만 맞고 무실점으로 잘 막고 7승째(4패)를 올렸다. 칼날같은 슬라이더와 최고 시속 150㎞의 빠른 볼이 조화를 이루며 삼진을 무려 8개나 잡았다. 팀이 7위 히어로즈에 연패해 3위 롯데에 2경기 차로 쫓기는 상황에서 이혜천은 4위 경쟁으로 집중도가 높은 삼성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삼성 에니스-안지만으로 이어지는 투수진도 1점만 내주며 역투했지만 이혜천은 흔들리지 않고 무실점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혜천은 “중요한 경기라 집중했고, 평소보다 몸쪽공을 많이 던지며 적극적으로 투구했다”면서 “포스트시즌에서 어떤 보직이라도 멋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웃었다.

올시즌 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리는 것도 이혜천에겐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실제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꾸준히 이혜천에게 관심을 보이는 등 그의 주가는 소리없이 오르고 있다. 제2의 임창용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올해 프로야구 FA시장에서 ‘이혜천주’는 알짜배기 ‘가치주’가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