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은 사라졌지만 마음은 편안해졌다.

두산 정재훈(28)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만감이 교차했다.

김경문 감독이 이번 시리즈 불펜 운용 방침을 밝히면서 집단 마무리체제로 가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팀의 ‘부동의 마무리’였던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진 현실. 정재훈은 2005·2006년 연속해서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하는 등 팀의 확실한 원톱 마무리로 활약했다.

그러나 올시즌에는 부침이 많았다. 직구의 힘이 뒷받침되지 못한 가운데 전매특허인 포크볼의 위력도 떨어졌고 제구도 잘 되지 않아 힘든 경기가 많았다. 그리고 맞은 플레이오프. 마무리 탈락으로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무리 부담을 덜었으니 편하게 던지자고 생각했다”는 정재훈. 그 마음대로 정말 잘 던졌다.

정재훈은 16일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4로 뒤지던 5회초 팀의 세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중간계투였지만 1점차를 지켜야 하는 쉽지 않은 상황. 그러나 중간에 나온 상황인 만큼 편안하게 던지려고 노력했다.

직구 최고 시속은 140㎞ 초반대에 그쳤지만 볼끝이 묵직했고, 제구가 절묘했다. 초반 김선우를 난타했던 삼성 타선의 노림수를 피해 가는 볼배합도 돋보였다.

2.2이닝 동안 1안타만 맞고 삼진 2개를 잡으며 무실점. 마운드에서 안정감을 보이자 타선도 힘을 냈고, 두산의 짜릿한 역전 드라마의 원동력이 됐다.

정재훈은 “감독님께서 집단 마무리로 쓰신다는 말이 오히려 마음 편하고 더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됐다”면서 “포수인 상병이 형의 리드가 좋았고, 투구 밸런스가 좋아 리드대로 따랐다”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김경문 감독은 “재훈이가 안정적인 마운드 운영을 보이면서 한번은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고 그의 공을 높게 평가하면서 “내년부터는 선발이나 중간으로 쓸 예정”이라고 보직 전환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