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최건욱 감독님

전화통화는 자주 하는데 이렇게 편지를 쓰려니 좀 쑥스럽네요.

감독님, 그거 기억하세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경기 시작 2분만에 심판에게 대들다가 레드카드받고 퇴장당했던 일 말이에요. 감독님한테 편지를 쓰려고 하니 갑자기 그 일부터 떠오르네요. 그때 심판이 편파판정했다고 어린 나이에 제가 무척 화를 냈죠. 분을 참지 못해 결국 레드카드까지 받고 운동장에서 쫓겨났고요.

감독님은 운동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겠다며 화를 내던 저를 매섭게 혼내셨죠. 그때는 정말 감독님이 미웠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 감독님한테 혼난게 저한테 두고 두고 약이 된 것 같습니다. 박성화 감독님이나, 감독님이나. 욱하는 성질을 가진 저를 참 많이 다듬어 주셨죠.

감독님은 저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마다 항상 전화를 주곤하셨죠. “프리킥은 그렇게 차는게 아니다”, “오늘은 몸이 좀 무거워보이더구나”하시며 정말이지 따끔하게 지적해 주셨죠. 저에겐 그게 정말이지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스포츠칸’과 인터뷰하면서 ‘왜 최건욱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저를 만들어 주신 분이시라고요.”

감독님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저희 집에 거의 매일 오셨죠. 그렇게 감독님의 설득에 부모님이 넘어가(?) 안동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전 정말 오만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최고라고 말이죠. 그런데 감독님이 가보라고 한 16세 대표팀 훈련에 참가한 뒤 제가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감독님의 무언의 가르침으로 정신을 차리고 포지션도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바꾼 뒤 청소년대표팀에 뽑히고 올림픽대표팀에 이어 성인대표팀에도 발탁될 수 있었습니다.

전 아직도 제가 갈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의 가르침이 여전히 필요한 진규입니다. 지금처럼 앞으로 종종 연락드릴테니 부족한 저를 계속 가르쳐주세요.

From. 제자 김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