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님

건강하시죠, 감독님. 저 지현입니다.

어느덧 감독님과의 인연이 15년이나 됐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곳 미국까지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게 다 감독님 덕분 같습니다. 제게 주신 아낌없는 사랑과 무한 신뢰가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 감독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TV에서 느꼈던 카리스마에 숨이 막힐 정도로 어려웠거든요. 당시의 느낌은 이제 따뜻한 추억으로 제 마음에 자리잡았습니다.

저의 선수 시절 애칭이던 ‘꾀돌이’도 감독님이 만들어주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초구에 방망이를 잘 내지 않고 볼카운트를 가급적 늘려 투수를 괴롭히는 제 특성 때문에 얻은 수식어인데 감독님의 조언이 없었다면 선수생활 내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감독님이 그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는 안타를 못쳐 도 괜찮다. 투스트라이크가 될 때까지 타석에 서 있기만 해도 상대 투수가 부담을 느껴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자체로도 엄청나게 팀에 공헌하는 것이다”라는 말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 말씀이 귓가를 울려 순간 치고 싶은 욕심이 생기다가도 볼을 골라낸 적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글로 쓰다보니 94년 한 커피숍에서 감독님과 마주했던 기억도 납니다. 94년 시즌 초에 제 수비 실수로 팀이 진 날이었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는 저를 따로 커피숍으로 부르셨지요.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시더니 “오늘 게임은 비록 졌지만 이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100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 해주신 말씀을 이 순간까지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1년 전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인사드리러 간 자리에서 해주신 조언 또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가면 고기는 많이 먹을 수 있어도 생선회는 먹기 힘들다며 사주신 점심 또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감독님 아실지 모르겠네요. 9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고 겁도 없이 감독님 머리에 샴페인을 붓다가 귀에 상처를 입힌 ‘범인’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 사실을 자백하면서 너그러운 용서도 부탁드립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유소년야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반성해 봅니다. 감독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끝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조금은 쑥스럽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감독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From 유지현 전 LG 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