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겨울편지’를 연재합니다. 오프시즌을 맞은 스포츠 스타들이 직접 전하는 ‘겨울편지’에는 그들이 시즌 중에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들이 가득 실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첫 편으로는 LG가 올시즌 최악의 레이스 속에서 건진 ‘보물’ 안치용이 김재박 감독에게 보내는 편지를 소개합니다.

TO 김재박 감독님

감독님 치용입니다. 신문 지면을 통해 편지를 쓰려니 무척 쑥스럽습니다.

그래도 이것도 기회니 그간 입에서만 맴돌던 말들을 조금이나 표현해 보겠습니다. 시즌을 보내고 나니 1군에 올라오게 된 4월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때 그런 계기가 없었다면 저는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유니폼을 벗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사실, 올해 처음 1군에 왔을 때만 해도 이토록 오랜 시간 1군에 머물지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여러번 그랬듯이 ‘이러다가 곧 내려가겠지’라는 패배의식에 젖어서 큰 희망없이 잠실로 이동했고 경기에 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 자신이 참 바보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꾸준히 지켜봐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감독님께서 오랜 시간 뛸 기회를 주신 덕분에 올해를 특별한 시즌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올해를 돌아보니 팀이 너무 힘든 시즌을 보냈는데도 저는 팀성적에 대해 그렇게 많이 신경 못쓰고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그저 여기서 다시 떨어지면 영영 1군으로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 그저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그렇게 내 모습만 바라보고 보낸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조금 더 큰 선수가 될 것을 제 자신에게 먼저 약속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량면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진주 마무리훈련에서 감독님께서 해주신 말씀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그중에서 “단체훈련이나 팀훈련하고서 훈련 잘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진짜 승부는 혼자 있을 때와 쉬는 날 어떻게 땀을 흘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좋은 선수는 그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고 이번 겨울을 보낼 계획입니다.

진주에서 어느 때보다 잦은 미팅으로 굵은 메시지를 전해주시던 감독님. 감독님 말씀대로 올겨울을 알차게 보낼 것입니다. 밖으로는 다른 팀과 싸워야 하고 내부에서도 선의의 경쟁도 해야 하는 내년 시즌에는 작은 후회라도 만들지 않기 위해 제 앞의 시간을 잘 보내겠습니다.

지난 일요일 잠실구장에서 팬들과 함께 한 행사(러브 페스티벌)에서 행복했던 느낌을 내년 가을에 꼭 재현하도록 힘쓰겠습니다. 내년 가을에는 크게 웃는 감독님 한번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From 안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