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졸이던 90분이 흘러가고 추가 시간 3분이 주어졌다. 90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긴장과 불안의 시간이었다. 

주심이 시계를 볼 때마다 종료 휘슬 소리가 날까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나 관중석에서 불어대는 엄청난 '부부젤라' 소리에 휘슬의 울림이 들리지 않았다. 

선수들이 두 팔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초조했던 90분의 경기가 끝났고, 그토록 갈망했던 사상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다는 감격이 온 몸에 전율로 느껴졌다.

태극전사들은 서로 부둥겨 안았고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대표팀 벤치에서는 허정무 감독과 코칭스태프, 협회 관계자가 얼싸안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한 켠에서는 이영표 등 일부 선수들이 무릎을 꿇고 원을 그려 기도했다.

12번째 태극전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머나먼 아프리카 땅에서 태극전사들과 긴장되는 90분을 함께 한국 응원단의 얼굴에도 진한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23일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은 녹색으로 치장한 나이지리아 응원단과 붉은 물결의 한국 응원단, 그리고 노란색의 남아공 관중으로 확연히 구분됐다.

한국 응원단은 기껏해야 500여명 정도. 총 입장객 6만1874명 중 50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실상 아프리카 팀인 나이지리아의 응원단이었다. 

그러나 태극전사와 마찬가지로 한국 응원단의 전력 약세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잠시도 쉴새없이 '대~한민국'을 연호했고, 부부젤라 엄청난 굉음을 집어 삼킬 듯 했다.

한 골, 한 골. 피말리는 롤러코스터 게임에 일희일비하던 한국 응원단은 마침내 종료 휘슬이 울리자 껑충껑충 뛰는가 하면, 긴장이 풀린 듯 털석 주저앉는 이도 있었다. 

전광판에 눈물 흘리는 이영표가 잡혔다. 가슴에서 울컥하는 게 느껴졌다.

선수들은 2002년의 감동을 되새기 듯 한국 응원석으로 달려가 어깨동무하며 덩실덩실 뛰었고, 12번째 전사들도 함께 환호했다. 

이날의 환호는 단순히 첫 원정 16강 달성이라는 감격만은 아니었다. 2002년 이미 4강 신화를 이룩했음에도 홈어드밴티지라며 깎아내린 세계 축구계를 향해 당당하게 외치는 대한민국 축구의 우렁찬 포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