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릴수록 주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태극호 주장 박지성(29·맨유)이 이를 몸으로 보여줬다.

한국 축구의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은 대표팀 모두의 합작품이다. 그러나 '캡틴' 박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리스전 추가골로 대표팀의 분위기와 기세를 한껏 끌어올린 박지성은 23일 나이지리아전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요소요소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태극호를 지휘했다.

공격 때는 프리킥을 유도하는 영리한 플레이로 팀에 힘을 불어넣었고, 수비 시에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상대의 맥을 끊었다.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될 때는 특유의 침착함으로 위기를 극복해 찬사를 받았다.

이런 특급 활약으로 박지성은 지난 그리스와 1차전에 이어 경기 최우수선수(맨 오브 더 매치·MOM)에 뽑혔다.

박지성의 리더십은 그라운드 밖에서 더욱 빛난다. 2008년 10월 김남일(톰 톰스크)에게서 주장 완장을 넘겨받은 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다소 권위주위적이던 과거 주장의 모습과는 달리 박지성은 '소통'을 최우선으로 했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경청해 코칭스태프에게 전달했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선수에게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힘을 줬다. 그가 주장을 맡은 후 훈련장과 숙소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와 선수 사이의 소통 뿐만 아니라 감독·코칭스태프와 선수간의 소통에도 가교역할을 하며 팀을 하나로 결속시켰다.

허 감독도 '캡틴 박'의 요청을 선수단 운영에 반영했고, 이는 고스란히 선수단의 단합된 모습과 성적으로 드러났다. 

허정무호의 7회연속 월드컵 본선진출, 19년간 깨지 못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원정경기 승리, 자신감을 갖게 한 수차례 평가전에서의 하나된 대표팀 모습 등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팀을 조율한 박지성의 리더십이 있어 가능했다. 

박지성은 나이지리아전이 끝난 뒤 "그동안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목표로 한 16강을 드디어 이뤄내 기쁘다. 모든 선수가 16강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꼈을 것이고, 그런 역경을 이겨냈다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고 그동안 자신의 리드에 잘 따라준 동료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