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감독으로 사상 첫 16강 진출을 이뤄낸 허정무(55) 대표팀 감독은 오래전 '고집과 뚝심'으로 평가돼 왔다. 현역시절 끈질긴 승부 기질로 얻은 '진돗개'라는 별명이 지도자가 된뒤에 으레 따라붙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대표팀을 이끌면서 선수들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변신했고, '개성속에 조화'를 이뤄내 한국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23명이 하나되는 '화합'

허 감독은 최종엔트리를 확정하기 앞서 선의의 경쟁으로 전력 강화를 꾀하면서 화합을 중요한 전력으로 내세웠다.

베스트11을 물으면 늘 "23명이 하나되는 게 중요하다. 주전이나 백업요원이나 모두 베스트라는 생각으로 뭉쳐야 우리보다 나은 상대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운재·김남일·이동국·안정환 등 고참급 선수를 제외하고 중간 역할인 박지성에게 계속 주장을 맡긴 것도 신·구 조화를 통한 화합을 이끌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대표팀의 신·구 조화가 원활하게 이뤄져 격의없는 팀 분위기로 연결됐고, 그것이 전력으로 표출됐다. 

▲잠재력 이끈 '자율' 

박지성에게 주장 완장을 채우면서 허 감독이 강조한 것이 자율이다. 허 감독은 박지성에게 "경기장에서는 네가 감독이다. 감독이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은 주장이 대신 이끌어야 한다"며 힘을 실어주면서 '자율 속 규율'로 팀을 운영했다.

선수들과 미팅 후에는 주장 박지성을 중심으로 선수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을 꼭 배려했고, 훈련 때는 선수들과 함께하면서 거리감을 좁혔다. 

특히 코칭스태프가 나서지 않아도 고참들이 손수 후배들에게 경험을 바탕으로 전술이나 기술 등을 전수했고, 후배들은 서슴없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해 자산을 물려받았다. 

허 감독은 '근엄한 아버지보다 친근한 아빠'로서 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냈다. 

▲자신감 심어준 '긍정의 힘' 

산전수전 다 겪은 허 감독은 자신감이 실력 이상의 기량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이번 월드컵 16강에 진출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칫 위축될 수 있는 선수들에게 허 감독은 항상 "우리가 가진 것을 발휘하면 상대못할 것이 없다. 후회없는 경기를 하자"며 자신감과 함께 긍정적인 사고를 끊임없이 심어줬다. 

월드컵에 처음 나서는 중앙수비수 조용형을 비롯, 미드필더 김정우·기성용·이청용, 공격수 염기훈 등이 큰 무대에서 주눅들지 않고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또 대표팀의 과감한 세대교체도 '가능하다'는 긍정적 사고가 밑바탕이 된 도전정신에서 비롯됐다. .

부드러운 리더십을 강조하지만 허 감독이 변하지 않는 게 있다. 

허 감독은 월드컵 본선 체제를 앞둔 지난 달 '스포츠칸'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축구에서 지는 것만은 죽기보다 싫다"며 축구에 대한 애정과 강한 승부욕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