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을 하얗게 밝혔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은 밤이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 출전 여덟 번 만에 첫 원정 16강을 달성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도 분명 존재하지만 당시엔 외신과 세계인으로부터 '안방 월드컵 4강'이라고 폄하됐다. 또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스위스전에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16강 코앞에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래서 각오는 더욱 단단했다. 

기자는 영동대로·서울광장에 이어 세 번째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응원장소로 골랐다. 조별예선 유일한 오전 3시30분 경기여서 이동거리가 먼 곳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화장실과 편의점 등 편의시설과 좌석 등이 구비돼 있어 거리응원보다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 22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직장인의 퇴근시간인 오후 7시쯤부터 응원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경기장 내에는 기존 2개의 스크린 외에도 본부석과 건너편에 2대의 대형스크린을 설치해 응원객의 편의를 도왔다. 기자는 경기장 안 영화관에서 새벽 2시까지 영화를 보며 경기를 기다렸다.

경기가 시작된 23일 오전 3시쯤 경기장 안에는 3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응원객은 역시 기본복장인 붉은색 티셔츠와 악마뿔 그리고 태극기로 온몸을 꾸미고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다. 이번 월드컵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부부젤라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전 3시30분,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3만이 넘는 붉은 악마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전반 초반 나이지리아에게 실점하면서 분위기는 잠시 식었으나 이정수의 동점골이 터지자 금세 경기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치 2002년 당시를 재현하는 듯했다.

경기장은 후반 3분 박주영이 프리킥으로 역전골을 뽑자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붉은 악마는 경기장 군데군데 배치된 북을 요란하게 울렸고, 각종 구호와 파도타기 응원을 주도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후반 중반 나이지리아의 야쿠부에게 동점 페널티킥을 허용한 순간 경기장은 정적에 휩싸였으나 경기 종료 후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3만이 넘는 응원객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경기 후 응원객은 비교적 조용하게 일상을 준비했다. 경기 이후 더 열광적이었던 영동대로나 서울광장과는 달랐다. 경기 후 뒤풀이를 주도할만한 이벤트가 없고, 평일 새벽경기라 출근을 서둘러야 하는 직장인의 사정이 낳은 결과로 보였다.

이날 전국에는 50만이 넘는 인파가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축하했다. 전광판에는 '6월26일 오후 7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요'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