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따논 당상인줄 알았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진출 티켓을 놓친 울산 현대 구단은 땅을 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유독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울산의 비디오 분석관인 권재원씨(28)다.
권씨의 정체는 한마디로 말해 ‘간첩’이다. 몰래 상대팀의 훈련장을 찾아가 적정을 정탐하는 ‘스파이’.
특히 뛰어난 연기력과 감쪽같은 분장술은 ‘업계’에서도 알아준다.
“경기전날(17일) 전북팀의 연습경기를 다 봤어요. 전북선수들이 세트피스 훈련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더군요. 누가 어떻게 움직이는 것까지 모두 파악해 코칭 스태프에게 전달했는데….”
권씨의 스파이 작전을 되돌아보자.
그는 전북과 2차전을 앞두고 전북 비디오 분석관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의 훈련 스케즐을 교환했다.
“(비디오 분석관끼리) 서로 재주껏 염탐하기로 약속했어요.”
작전을 짰다. 오토바이 라이더로 변신한 뒤 전북의 훈련장 진입을 시도했다.
권씨는 전화 통화 하는 시늉을 하면서 일부러 큰 소리로 “야, 여기 최진철 등 선수들이 연습한다. 너두 빨리 이곳으로 와라”면서 일반인처럼 자연스럽게 감시망에서 벗어났다.
경기장 진입에 성공한 권씨는 ‘오히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진리를 믿고 전북의 최강희 감독 바로 옆에서 훈련을 지켜봤다.
“울산에서 뛰었던 김형범은 제 얼굴을 알고 있어 오히려 멀리서 지켜보면 발각될 것 같았어요. 실제로 김형범은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훈련 도중 힐끔힐끔 관중석을 쳐다보면서 절 찾고 있었어요.”
권씨의 변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인천과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힙팝 복장으로 위장하고 훈련장 진입에 성공했다.
경기장 주변까지 삼엄하게 통제했던 알 샤밥(8강전 상대) 훈련 장면은 아이들을 대동하고 산책나온 가족처럼 경기장 주변을 돌면서 전력을 탐색했다. 심지어 좀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선수에게 사인 해달라며 다가갔다.
울산은 이 덕분에 알 샤밥에게 6－0 대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번엔 실패했다. “전북 선수들이 세트피스 연습을 집중적으로 한다”는 ‘고급정보’를 선수단에 주었지만, 울산 현대는 바로 그 세트피스로 3골이나 먹고 말았으니….
〈울산|문승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