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바람이 불던 1일 모스크바 시내. 지독한 교통정체 탓에 운전자들은 저마다 입을 한자는 내밀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무리의 선수들이 버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다급한 표정의 선수들은 지체없이 근처 지하철역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이들은 러시아 프로축구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선수였다. 이날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인터 밀란(이탈리아)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D조 4차전을 앞두고 있던 모스크바 선수들은 느지막이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모스크바 지리를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다며 여유를 부린 것. 하지만 선수들의 안이한 판단은 화를 불렀다. 이날 모스크바 시내가 잇단 교통사고 등으로 교통대란을 앓은 탓에 선수들을 태운 버스는 오도가도 못하며 도로 위에 ‘주차’한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던 선수들을 향해 모스크바 서포터스는 “우리도 3시간30분이나 도로에 갇혀 있었다. 이러다가 경기 시간에 늦어 몰수패를 당한다. 어서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선수들은 버스를 박차고 나와 지하철로 갔다. 선수들의 다급한 사정을 안 지하철 공사 직원들은 표값을 받지 않았다. 시민들은 자리를 양보하며 놀란 토끼 눈을 한 선수들을 다독였다. 선수들은 시민들의 도움 덕분에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경기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하철 역에서 경기장까지 2㎞ 정도를 전속력으로 내달린 탓에 막상 경기가 시작했을 때 이들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비지땀을 흘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기를 시작한 모스크바 선수들은 전반 59초 만에 인터 밀란의 아르헨티나 출신 공격수 훌리오 크루스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그게 끝이었다. 모스크바는 0－1로 무너졌다.
〈전광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