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얼굴없는 주인공’이 뜬다](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1/25/6a2689d.jpg)
타이틀롤(title role). 연극 영화 등의 주인공을 뜻한다. 하지만 엄밀히 정의하면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라 제목에 거명된 인물을 겸한 경우를 말한다.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이영애), ‘선생 김봉두’의 김봉두(차승원) 등이다.
‘그놈 목소리’에서 타이틀롤은 그놈(강동원)이다. 유괴범인 그놈은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배역이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모습만 몇 차례 나오는, 목소리가 중요한 타이틀롤인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타이틀롤은 그놈이 처음이다.
이 역을 놓고 제작진은 숙의를 거듭했다. 첫 과제는 스타와 무명 가운데 누구를 출연시키느냐는 것. 무명을 기용하면 긴장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부작용이 우려됐다. ‘그놈 목소리’가 미제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가 개봉된 뒤 배우와 실제 범인을 착각하는 등 혼란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없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제작진은 유명인을 쓰기로 했다.
제작진 사이에 여러 스타들이 거론됐다. 이 가운데 1순위가 강동원. 각본·연출을 맡은 박진표 감독이 가장 선호했다. 선한 이미지와 악역의 상충효과를 떠나 박감독은 강동원이 악역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너는 내운명’ 때 은하(전도연)의 전 남편으로 캐스팅하려 했다. 주위의 반대로 뜻을 접었지만.
이번 캐스팅도 주변에선 그리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박감독이 장담한 대로 나타났다. 강동원이 흔쾌히 출연키로 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강동원은 모든 목소리 연기를 촬영현장에서 동시 녹음으로 해냈다. 편집 후 녹음실에서 작업해도 되는데 25차례에 걸쳐 현장에서 동시 녹음을 했다. 2시간을 기다렸다가 5분 동안 연기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제작진은 이같은 열정 덕분에 그는 물론 설경구·김남주 등의 연기도 빛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강동원에 앞서 극영화 타이틀롤의 목소리 연기를 한 배우는 오달수이다. ‘괴물’의 타이틀롤인 괴물, 3D 캐릭터인 이 괴물의 상태와 심리를 실감나게 표출해 ‘괴물’의 신화 달성에 기여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미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 초기부터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임자로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에게 1인 2역을 맡기는 게 부담스러워 고민하던 중 오달수를 캐스팅했다. 오달수는 봉감독과 송강호 등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 우연히 동석했다가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오달수는 괴물의 목소리 녹음 작업을 스튜디오에서 3일 동안 했다. 괴물이 죽어가는 장면을 녹음할 때에는 눈물을 보여 주위를 숙연케 했다. 봉감독은 오달수의 목소리와 채집해 둔 바다사자 목소리 등을 변조해 기괴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