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천호진의 재발견](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2/28/6a0189d-center.jpg)
연기는 창조된 현실과 그 인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배우는 이같은 연기로 말한다. 배우의 위상은 그들의 연기로 가름된다.
천호진(46). 최근 몇 년 사이에 연기로 존재성을 검증받아온 중견 배우다. 그가 1일 개봉된 ‘좋지 아니한가’(감독 정윤철·제작 무사이필름)로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천호진의 재발견’이다.
‘좋지 아니한가’는 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의사소통의 부재, 이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이 고조되고 풀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재미와 의미를 아우른,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올해의 영화’로 손꼽히는, 중학생 이상 온 식구가 함께 볼 만한 영화다.
천호진은 사분오열인 한 가족의 ‘고개 숙인’ 가장, 학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영어 교사, 퇴근길에 낯모르는 여학생을 도운 게 꼬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인물을 오롯이 체화해 냈다. 문희경·유아인·황보라·김혜수·박해일·정유미·이기우 등과 함께 스크린을 꽉 채웠다.
천호진은 지난해 ‘좋지 아니한가’와 뮤지컬 코미디 영화 ‘삼거리 극장’, 2편만 출연했다. 출연 동기는 “충무로와 관객들에게 꼭 필요한 영화”라는 점. “재미있고 행간의 의미도 음미할 수 있는, 모 아니면 도로 치닫는 너무 진지하거나 가벼운 대다수 한국영화의 중간에서 ‘허리’ 역할을 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두 작품을 하면서 성숙해졌다고 느껴요. 전작들이 적잖이 밑거름이 됐죠.”
그의 전작은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주먹이 운다’ ‘혈의 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데이지’ ‘흡혈형사 나도열’ ‘비열한 거리’ 등. 제각각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한 영화들이다.
천호진이 이 영화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감독들이 그의 반듯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을 높이 산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역시 작품을 보는 눈을 갖췄고. 여느 배우들과 달리 매니저를 두지 않아 감독들이 그와 쉽게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출연 여부를 의뢰받은 뒤 이틀 이내로 답하는 그의 시원한 성격도 보탬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는데 좋아서 버텼는데 젊은 감독들이 좋은 영화로 찾아준 게 고맙다”면서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천호진은 인하대 화학과를 중퇴했다. 1학년을 마친 뒤 공군에서 35개월간 복무했고, 복학 시기가 맞지 않아 약 1년을 쉬던 중 MBC 탤런트 17기(1983년)로 데뷔했다. 영화 데뷔작은 ‘욕망의 거리’(85). 이후 ‘청블루 스케치’ ‘지금은 양지’ ‘이장호의 외인구단2’ ‘며느리 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오세암’ 등을 거쳐 ‘타악기의 계절’(90)을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 ‘옥이이모’ ‘모델’ ‘사랑의 전설’ ‘순정’ 등 TV드라마에 전념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로 10여년 만에 충무로에 재입성, ‘이중간첩’을 거쳐 ‘말죽거리 잔혹사’(2003)를 발판으로 도약을 거듭했다.
아버지가 유명 프로 레슬러 천규덕씨(76). 아버지를 닮아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천호진은 연기를 하게 된 대해 미국영화 ‘디어 헌터’(1978)를 들었다. “고2 때 몰래 본 뒤에 배우를 꿈꿨다”면서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과 인간이 보이는 배역을 좋아한다”고 했다.
“배우는 작품과 연기로 말하고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지요. 천호진이 한 작품이라면 믿어주고 찾아주는 관객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할 겁니다.”
MBC 드라마 ‘궁S’에서 ‘좋지 아니한가’의 인물과 상반된 아버지 효장대공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그의 다음 영화는 공수창 감독의 ‘GP 506’. 군대 GP(Guard Post)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그리는 영화다. 천호진은 사건 해결에 뛰어든 수사관 역을 맡았다. “앞으로도 그의 영화를 더 볼 수 있다는 게 가슴을 뛰게 한다”는 팬들에게 부응하려는 천호진의 활약이 기대된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