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는 영화의 얼굴이다. 이목구비에 해당되는 인물과 제목, 헤드카피(headcopy)나 태그라인(tagline) 등을 통해 어떤 영화인지를 알려준다. 영화에 대한 첫인상을 좌우한다.
최근 영화 가운데 눈길을 끄는 포스터는 ‘포도나무를 베어라’다. 극중 인물을 내세운 여느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티저(teaser), 본 포스터 모두 이수동 화백의 그림을 사용했다.
이화백은 민병훈 감독이 보내준 ‘포도나무를 베어라’를 본 뒤에 포스터용 그림을 그렸다. 미술전문지 아트프라이스의 김윤섭 기자가 이화백과 민감독을 연결해주었다. 김기자는 민감독의 전작 ‘괜찮아, 울지마’의 미술감독을 지낸 바 있다.
붉은색 바탕에 난 흰색 십자로, 검은색 두 남녀와 포도나무 등으로 구성된 이 포스터는 지난해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많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됐다.
소장 붐이 일었고, 이화백의 전시회에서 그림이 팔리기도 했다. 본 포스터는 티저 포스터의 종교적 색채를 걷어내고 화사한 느낌을 강화한 다른 그림을 사용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제목은 손으로 쓴 글씨(캘리그래피·calligraphy)다. ‘그놈 목소리’ ‘바람피기 좋은 날’ 등의 제목도 캘리그래피다. 세 작품 모두 갖가지 붓과 먹을 사용해 영화에 담긴 의미를 실어냈다.
영화제목으로 캘리그래피가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캘리그래퍼들은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년)를 원조로 꼽는다.
캘리그래퍼들에 따르면 캘리그래피에서 글꼴보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다. 이를 위해 캘리그래퍼들은 연필·펜·크레파스·붓·풀·이쑤시개·유리조각·면봉 등 숱한 도구를 사용한다. 똑같은 걸 이용해도 바탕 종이에 따라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에 종이 또한 여러 종류를 이용한다.
일례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나무젓가락을, 지난해 크게 성공한 최동훈 감독의 ‘타짜’는 칡뿌리를 사용했다. ‘타짜’를 쓴 캘리그래퍼 이상현씨는 작업을 앞두고 좋은 패나 나쁜 패가 들어왔을 때의 느낌을 경험해 보기 위해 동료들과 ‘섰다’를 했다. 굉장히 거친 칡뿌리를 쥐고 조금 두꺼운 종이에 먹이 팍 튀게 써서 비장의 히든 카드를 내려놓을 때의 느낌을 살려냈다.
최근 포스터 중 눈길을 끈 또 하나의 작품으로는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이 손꼽힌다. 남녀 주인공을 내세우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이 작품은 15명의 극중 인물을 모두 등장시켰다.
폐공장을 배경으로 캐릭터를 상징하는 소품을 들고 있는 다섯 주인공을 전면에, 10명의 조연을 곳곳에 배치했다. ‘누가 우리를 모았는가? 조종하는 자 X는 누구인가’라는 헤드카피를 넣어 15명을 찾아보는 재미와 더불어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태국의 한 영화사는 ‘바람피기 좋은 날’의 포스터만 보고 구매를 결정했다. 이처럼 포스터는 개봉에 앞서 영화의 호부를 좌우한다. 흥행의 선봉장이자 저격수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제작사는 홍보마케팅 및 광고 디자인 전문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관객의 눈과 가슴을 사로잡을 만한 포스터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다.
예전에는 극중 장면을 찍은 스틸을 사용했지만 요즘은 포스터용 사진을 기획·촬영한다. 제작 초기에는 티저, 본 포스터는 개봉을 앞두고 각각 여러 종류를 만든다. 수출을 위해 해외용을 따로 만드는 것도 일반화됐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