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싱’ 몽골 北마을 재현…현지인 엑스트라
‘크로싱’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등은 해외 로케이션을 거쳐 완성됐다. ‘크로싱’은 중국과 몽골, ‘놈놈놈’은 중국에서 대부분의 주요 장면을 찍었다. 강행군을 요하는 해외 촬영은 제반 여건이 국내와 다른 데에다 돌발 상황 또한 잇따라 어려움이 적지 않다. 해외 로케이션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 몽골에 북한 마을 만들어
몽골 바이요 마을에 세운 북한마을 세트. 차인표와 신명철은 이곳과 강원도 영월 마차리에 만든 북한 마을 등을 오가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마다 않고 열연을 펼쳤다.
‘크로싱’은 새터민(탈북자)의 이야기를 조명한 휴먼 드라마다. 가족의 약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북한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용수(차인표)와 아비를 찾아나선 아들 준이(신명철)의 엇갈림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몽골·중국 촬영을 통해 새터민들의 실제 탈북 경로를 담아 이야기의 사실성과 감동을 더해준다. 제작진에 따르면 3개월간 한국·몽골·중국 촬영 이동거리가 총 8000㎞에 달한다.
몽골 촬영은 울란바토르 국제공항과 근교, 고비사막과 초원, 바이요 마을 등지에서 했다. 이 가운데 공항 장면은 전세 비행기로 도착한 뒤 곧바로 찍었다. 일정상 짐을 내리자마자 준비작업을 거쳐 촬영을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빠듯한 시간과 제한구역인 점을 감안, 제작진은 사전 계획을 철저히 짰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반면 고비사막과 초원 장면 촬영은 시종 고행길이었다. 고비사막은 중국과 몽골에 걸친 아시아 최대의 사막. 울란바토르에서 고비사막까지는 자동차로 16시간이 걸리는데 폭우 등으로 인해 30시간이 넘게 걸렸다. 고도가 높고 날씨·기온 변화가 심해 제작진은 촬영 당시 장비를 이동하고 사용하는 데 곤욕을 치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촬영을 강행, 한국영화 최초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고비사막과 초원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중국 랴오닝성(요령성) 부근에 있는 드넓은 옥수수밭, 대규모 벌목장과 기차 안 풍경 등과 더불어 이전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영상미를 보여준다.
새터민 수용소, 함경도의 시골 장터 장면 촬영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장면은 원래 한국에서 찍으려고 했는데 계획을 바꿔 울란바토르 공항 근교와 바이요 마을에서 촬영했다. 북한 주민과 외모가 닮은 몽골인을 보조출연자(엑스트라)로 동원, 사실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촬영에 앞서 울란바토르 근교 공터를 온갖 소품·미술 장비를 동원해 북한의 시골 장터로 바꿔야 했다. 통역을 통해 수많은 보조출연자들의 동선을 일일이 잡아줘야 했다. 덕분에 용수가 중국으로 떠나기 전 TV를 팔아 식량을 구하고, 준이가 꽃제비 아이들 틈에서 국수를 얻어먹는 장면 등을 실감나게 담을 수 있었다.
# 사막·정글·빙벽·남극을 찾아서
한국영화 가운데 본격 해외 촬영을 한 작품은 많지 않다. 개봉을 앞둔 ‘놈놈놈’과 ‘님은 먼곳에’를 비롯해 ‘가족시네마’ ‘깊고 푸른 밤’ ‘나의 결혼원정기’ ‘남극일기’ ‘데이지’ ‘러브 토크’ ‘마유미’ ‘무사’ ‘베를린 리포트’ ‘비천무’ ‘빙우’ ‘아이언 팜’ ‘알 포인트’ ‘야생동물 보호구역’ ‘역도산’ ‘인샬라’ ‘중천’ ‘청연’ ‘태풍’ ‘하얀 전쟁’ 등이 대표적이다. ‘번지 점프를 하다’ ‘이중간첩’ ‘조폭 마누라3’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등 특정 장면만 외국에서 찍은 작품은 상당히 많다.
이 가운데 ‘님은 먼곳에’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했다. 그러나 촬영은 제반 여건을 감안, 캄보디아에서 찍었다. ‘알 포인트’ 등도 마찬가지. ‘이중간첩’ 역시 1980년 6월 동베를린 검문소 장면을 체코의 옛 시가지 폴레쇼비체에 만든 세트에서 촬영했다.
‘깊고 푸른 밤’ ‘나의 결혼원정기’ ‘남극일기’ ‘베를린 리포트’ ‘빙우’ ‘인샬라’ ‘하얀전쟁’ 등은 각각 해외 로케이션 최초 기록을 세운 화제작이다. ‘깊고 푸른 밤’(1984)은 미국, ‘나의 결혼원정기’(2005)는 우즈베키스탄, ‘남극일기’(2005)는 뉴질랜드, ‘베를린 리포트’(1991)는 유럽, ‘빙우’(2004)는 캐나다, ‘인샬라’(1996)는 모르코, ‘하얀전쟁’(1992)은 베트남 올 로케이션(일부 장면은 국내) 최초를 기록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촬영에선 의사소통 문제도 난제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일례로 ‘인샬라’에선 심한 경우 아랍어·불어·스페인어·영어 등 4개국어를 거쳐야 해 간단한 내용조차 소통하는 데 5분 이상이 걸리고는 했다.
특수한 상황과 돌발 상황도 잇달아 곤욕을 치르곤 한다. ‘남극일기’ ‘빙우’ ‘인샬라’ 등처럼 촬영 중 엔지(N.G)가 나면 눈이나 모래에 난 발자국을 일일이 지우고 네댓 시간씩 기다렸다가 다시 찍는 등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치르는 어려움은 다반사에 속한다. 실크로드 관문이자 오아시스로 유명한 중국의 돈황 등 오지에서 100일 동안 촬영한 ‘놈놈놈’의 경우 무술감독이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 했고, ‘인샬라’에선 스페인 특수효과팀이 맡은 마지막 다리 폭파 장면 촬영을 마친 뒤에 미폭발 효과용 폭탄이 뒤늦게 터지는 바람에 모르코의 한 스태프가 한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깊고 푸른 밤’의 경우 촬영부 조수가 촬영 종료 후 미국에서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미대사관에서 한동안 한국 영화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사태를 낳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