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추억전 #7’에서 상영되는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1987)의 한 장면. 이 영화의 원로 스태프들은 제1회 서울충무로영화제에서 마련되는 무대인사 및 관객과의 대화 때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예정이다.
고전영화는 세상에 공개된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을 일컫는다. 25일부터 11월1일까지 열리는 제1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선 고전영화가 대거 상영된다. 흥미로운 사연이 담긴 작품이 수두룩하다.
# “신과 섹스한다고 생각하고 해봐”
김수용 감독의 ‘사격장의 아이들’(1967)은 군인들이 사격훈련을 하는 날에 찍었다. 특수효과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가평·포천의 사격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촬영했다. 존 부어맨 감독의 ‘서바이벌 게임’(1972)은 위험한 장면이 많아 모든 보험회사들로부터 촬영 관련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채 찍었다.
‘천국의 문’(1980)은 할리우드 메이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디어 헌터’로 주가가 치솟은 마이클 치미노 감독을 영입해 당시로서는 엄청난 35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다. 그러나 흥행에 참패, 영화사는 MGM에 매각되고 말았다. 이원세 감독의 ‘엄마 없는 하늘 아래’(1977)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힘입어 흥행에 성공, 이후 3편까지 제작됐다. 박대통령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고 감동, 전국의 초등학교에 단체관람을 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은 개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라임라이트’ 등이 대표적이다.
‘모던 타임즈’(1936)는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다. 채플린은 이 영화의 배경 노래를 불러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영화는 공산주의 색채를 지녔다는 이유로 독일·이탈리아에서 상영이 금지됐다. ‘위대한 독재자’(1940)는 당시 나치 휘하 국가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채플린의 오랜 팬이었던 히틀러는 포르투갈에서 몰래 필름을 입수, 자신의 방에서 연속해서 두번을 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채플린은 히틀러의 감상 소감을 알고 싶어 백방으로 수소문했는데 히틀러가 권총으로 자살한 뒤였다. 이 영화는 스페인에서는 독재자 프랑코가 죽은 뒤인 1975년에,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 캐릭터 때문에 무솔리니의 부인이 사망한 후인 2002년에야 개봉됐다. ‘라임라이트’(1951)는 채플린이 스위스로 망명하기 전 할리우드에서 만든 마지막 영화다. 매카시즘 광풍 때문에 미국에서 1972년에 처음으로 상영됐다.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1977)에서 무당이 접신을 시도하는 장면을 찍을 때 김감독은 무당 역을 맡은 박정자씨에게 “신과 섹스를 한다고 생각하고 해보라”는 연기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트 복원작인 ‘서스페리아’(1977)에 나오는 모든 살인자의 손은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 중간에는 조지 스콧이 열변을 토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스콧이 실수로 넘어졌는데 완벽주의자로 손꼽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그냥 넘어가면서 담긴 장면이다.
# 송해는 타고난 노래자랑대회 사회자
‘사격장의 아이들’에서 주인공 송규현 등 아역배우들은 백상예술대상 전신인 한국연극영화예술상에서 이 해에만 신설된 집단아동연기 특별상을 받았다. 송규현씨는 방송인 송지헌씨의 동생이다. ‘사격장의 아이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이던 그는 “연기를 잘하지만 총명하니까 공부를 하라”는 김감독의 권유를 받아들여 학업에 전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한국IBM을 거쳐 현재 코스닥 등록 IT기업(오픈 베이스) 대표를 맡고 있다.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마리아 수녀는 원래 오드리 햅번이었다. 줄리 앤드루스는 햅번의 대타로 출연해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했다.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끈 담가명 감독의 ‘아버지와 아들 부자(父子)’는 10년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2006년에야 제작됐다. 이 기간 동안 아버지 배역은 유덕화·증지위·양가휘 등을 거쳐 곽부성이 맡아 홍콩 금마장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김수용 감독은 ‘공처가’(1955)부터 ‘침향’(1999)까지 109편을 연출했다. 이 가운데 ‘산불’ ‘어느 여배우의 고백’ 등 10편이 1967년에 연출한 작품이다. ‘어느 여배우의 고백’에서 김감독은 카메오로 출연도 했다. 김진규·황정순·남정임씨 등이 실명으로 출연했다.
1967년은 한국영화 사상 연간 제작편수가 가장 많은 270여편이 제작된 해이기도 하다. 한형모 감독의 ‘엘리지의 여왕’도 이 해에 제작됐다. 국민가수 이미자씨가 가난과 시련을 딛고 가수로 성공한 뒤 친어머니를 만나는 과정이 10여곡의 히트곡과 함께 펼쳐진다. 영화 도입부에 이미자씨가 나와 영화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미자씨 역은 남정임씨가 맡아 립싱크 연기를 펼쳤다. KBS 2TV 장수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으로 각광받고 있는 송해씨가 노래자랑대회 사회자로 나온다.
이 영화는 댄스홀·극장쇼·무희·방송국·레코드점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병일 감독의 ‘반도의 봄’(1941)은 1940년대 문화의 보물창고 같은 영화다. 김종래 감독의 ‘소문난 남자’(1970)는 1970년대에 눈·비 오는 장면 효과를 어떻게 냈는지 등을 엿보게 해준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