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의 김상진 감독(사진 오른쪽). 이 장면 촬영은 김감독과 출연진의 일사불란한 열연에 힘입어 한번에 끝났다.
# 필름에 사인하듯 출연
김상진 감독이 화제다. 최근 연출작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에 우즈베키스탄으로 원정결혼을 떠나는 농촌 총각으로 출연, 촌스러운 양복에 기름을 잔뜩 바른 2대8 가르마 머리를 하고 사투리를 쓰며 뛰어오는 연기를 보란듯이 해냈다.
그는 이에 앞서 자신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 철가방(김수로) 등과 고스톱을 치는 중국집 주방장, ‘신라의 달밤’에 기동(차승원)과 병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환자, ‘광복절특사’에 재필(설경구) 무석(차승원)이 참석한 야유회를 진행하는 사회자, ‘귀신이 산다’에 필기(차승원)를 진료하는 의사로 나와 주목받았다. 오기환 감독의 ‘선물’에 인기 개그맨 유식(김수로)의 매니저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에 따르면 정진우 감독은 자신의 영화 52편에 사인(sign)을 하듯 출연, ‘한국의 히치콕’ 원조로 손꼽힌다. 이장호 감독도 연출작 19편 가운데 ‘어우동’ 등 분장이 까다로운 작품 외 대부분에 출연했다. 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도 상환(류승범) 친구의 아버지로 나왔다. 이처럼 깜짝 출연한 감독은 부지기수다.
정초신 감독은 자신의 영화 ‘자카르타’에 죄수, ‘몽정기’에 노점상, ‘남남북녀’에 나이트클럽 DJ로 출연했다. 신승수 감독의 ‘엑스트라’에 영화 속 영화의 조감독도 맡았다. 신감독과 이무영·정지영·장현수 감독은 영화 속 감독으로 등장했다. 김대승·김영빈 감독도 스승인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에 극중 감독으로 출연했다. ‘피도 눈물도 없이’에선 김홍준·봉준호·오승욱·이무영·임필성 감독이 각각 호텔 사장·형사·여관 종업원·지배인·가방가게 주인으로 나왔다. 임감독은 ‘괴물’에 남일(박해일)을 밀고하는 대학선배 역도 맡았다. 박기형·박헌수·이현승·임상수·허진호 감독은 ‘태양은 없다’에서 헤어숍 내 감독으로 호흡을 맞췄다.
임상수 감독은 의사 역 단골 카메오다.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에서 이비인후과 군의관, 자신의 영화 ‘눈물’에서 의사, ‘그때 그 사람들’에 김부장(백윤식) 주치의 역을 맡았다. 최동훈 감독은 임감독의 단골 카메오로 ‘눈물’에 엘리베이터 내 연인, ‘바람난 가족’에 순경, ‘그때 그 사람들’에 군의관으로 등장했다. 최감독은 자신의 영화 ‘타짜’에 영안실 관계자로 출연했지만 편집 때 삭제됐다.
이 밖에 곽재용 감독은 ‘엽기적인 그녀’에 포장마차 손님, 임순례 감독은 ‘여섯개의 시선’ 가운데 ‘그녀의 무게’에 영화감독,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에 중국집 주방장, 장진 감독은 ‘킬러들의 수다’에 살인청부인, 장항준 감독은 ‘불어라 봄바람’에 서점 주인으로 나왔다.
# 북 치고, 장구 치고
류승완·박철수·배창호·여균동 감독 등은 주연 배우이기도 하다. 특히 여균동 감독은 1994년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은행원에서 인기작가가 되는 인물로 출연해 청룡영화상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2007년 현재 감독이 배우상을 받은 것은 여감독이 유일하다. 그는 ‘성공시대’ ‘맨?’ ‘박봉곤 가출사건’ ‘이재수의 난’ ‘주노병 베이커리’에서도 출중한 연기력을 과시했다.
박철수 감독은 1996년에 연출한 ‘학생부군신위’로 타슈겐트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결정됐는데 사양, 그랑프리만 수상했다. 몬트리올국제영화제에선 감독·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목된 뒤 감독상을 받았다. 박감독은 “원래 김명곤씨가 주인공인데 그가 장례를 감독의 시선으로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 내부 논의를 거듭한 끝에 내가 맏상제로 출연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영화 ‘어미’ ‘접시꽃 당신’ ‘오늘 여자’ ‘오세암’ ‘우리 시대의 사랑’ 등과 김성홍 감독의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서 단역을 맡기도 했다.
배창호 감독은 3편의 출연작에서 주인공만 맡았다.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에 이발사로 출연, 열연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자신이 연출한 ‘러브스토리’에 노총각, ‘길’에 대장장이로 출연했다. ‘러브스토리’의 경우 상대역은 그의 아내 김유미씨가 해냈다.
류승완 감독은 자신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10대와 형사로 출연해 실감나는 액션연기를 펼쳐 주목받았다. ‘짝패’에서 무술감독 정두홍과 콤비를 이뤄 본격 액션연기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또 박찬욱 감독 작품의 단골 카메오로 ‘3인조’에 악기점 점원, ‘복수는 나의 것’에 중국집 배달부, ‘친절한 금자씨’에 행인으로 나왔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 조연인 종두(설경구)의 동생으로 출연했다.
이 밖에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 ‘나쁜 남자’에 한기(조재현)의 수하들이 몰래 찍은 카메라에 엉덩이만 보이는 손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겨울 이야기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장선우 감독은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에서 과거에 박수무당이던 아버지 역을 맡았다. 배우 출신인 하명중 감독은 두 번째 연출작 ‘땡볕’에서 주인공도 맡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혼자 도는 바람개비’에서 주인공의 아버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에서 주인공의 노년 역을 맡아 배우로서의 열정도 불살랐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