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안성기. 그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대통령, ‘한반도’에서는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대통령으로 출연해 ‘국민배우’다운 면면을 보였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치열하다. 대통령 소재 영화 역시 산통을 치렀다. 대선 소재 영화는 강우석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5) ‘긴급조치 19호’(2002) ‘피아노 치는 대통령’(2002) ‘효자동 이발사’(2004) ‘그때 그 사람들’(2005) ‘바리바리 짱’(2005) ‘한반도’(2006년) ‘잘살아보세’(2006) 등이 있다.
# 대통령을 뽑아라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는 여야 대선 후보(신성일·박근형)의 대결을 그렸다. 테러 사주, 스캔들 등 내용을 놓고 제작 당시 모처로부터 온갖 압력과 위협에 시달렸다. 공연윤리위원회 등급 심의 때에도 마찬가지. 곽종원 위원장이 “이 정도 내용과 완성도라면 관객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용단을 내린 끝에 ‘연소자관람불가’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효자동 이발사’ ‘바리바리 짱’ ‘잘살아보세’의 대통령 역은 각각 박정희 전 대통령과 외모가 닮은 이가 맡았다. 이 가운데 김진명씨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공모를 통해 선발된 이균식씨가 맡았다. 연기 경험이 없는 이씨는 당시 서울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이었다. 이 영화에는 이밖에 현 대통령은 김성원이 맡았고, 김계원·차지철·김재규 등 제3공화국 실세 인물은 이들과 닮은 연극배우 김정태씨, 기업체 임원 김범식씨, 중소기업 대표 최재균씨가 맡아 화제를 낳았다.
‘효자동 이발사’에선 연극배우 조영진, ‘바리바리 짱’과 ‘잘살아보세’에서는 이창환이 맡았다. 이창환은 두 영화와 MBC 드라마 ‘제5공화국’ 등 박전대통령 역을 도맡은 배우로 유명하다.
‘긴급초치 19호’에선 방송사 성우, ‘피아노 치는 대통령’과 ‘한반도’는 안성기,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송재호가 맡았다. ‘효자동 이발사’와 ‘그때 그 사람들’에는 ‘12.12’로 정권을 잡는 전두환 장군이 얼핏 나온다. 이 역은 전전대통령의 대머리를 감안해 ‘효자동 이발사’에선 보조출연자(엑스트라),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한겨레신문 전 영화담당인 임범 기자가 맡았다.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은 원래 대통령 역에 무명배우를 쓰려고 했다. 주인공(백윤식·한석규)의 명성을 고려, 인기인으로 바꾸면서 외모는 고려하지 않고 송재호를 캐스팅했다. 이창환·송재호·안성기 캐스팅은 어렵지 않았다. 반면 ‘긴급조치 19호’는 대통령 역 섭외를 받은 이들이 모두 거절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다. 김태규 감독은 결국 시나리오를 뒷모습에 목소리만 들리는 것으로 바꿨다.
# “감히 각하를…?”
‘피아노 치는 대통령’은 대통령이 주인공인 첫 영화다. 전만배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한 건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시나리오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초기에 완성했다. 제작 소식이 알려진 뒤 당시 안기부 직원들이 영화사를 찾아오고, 유사 소재의 미국영화 ‘대통령의 연인’이 개봉되는 바람에 지연돼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말년에야 완성·개봉됐다. 권위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를 호전시켜 주는 로맨틱코미디인데 기획·제작·개봉에 10여년, 세 대통령이나 거친 것이다.
‘그때 그 사람들’은 뜨거운 화제를 낳았다. 법정 공방이 8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개봉을 앞둔 2005년 1월 박전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낸 데 대해 법원이 3분50초 분량의 뉴스 필름을 삭제하고 상영하라고 내린 판결과 지난해 8월 원본 상영을 허용하면서 제작사는 지만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판결에 대해 양 측이 모두 불복한 것이다.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2’(1996)와 구성주 감독의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1997)는 대통령 관련 대사 때문에 등급심의 과정에 어려움을 치렀다. ‘투캅스2’는 강형사(박중훈)의 “누구는 멸치어장이라도 있지만”이란 대사 한마디가 문제가 됐다. ‘그는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는 미혼모 난희(양정지)가 곤란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던진 농담, 영화의 원작인 하일지씨의 소설에 나오는 대사가 걸렸다.
난희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수(김갑수)에게 “얘 아버지는 김영삼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지금은 대통령을 하고 있어요”라고 한 데 이어 “사실은 김대중씨 아들이에요”라고 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 공연윤리위원회는 국가원수 모독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자진 삭제를 하지 않으면 등급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 등급을 받지 못하면 6개월 뒤에야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강우석 감독은 이에 맞서 삭제하지 않고 ‘연소자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구성주 감독은 강경론을 접고 삭제하고 말았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