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이 그린 것으로 추청되는 \'천산대렵도\'
영화 ‘쌍화점’에는 공민왕이 그린 ‘천산대렵도’를 영상으로 구현한 장면이 나온다. ‘미인도’에선 신윤복의 ‘이부탐춘’ ‘단오풍정’ 등을 영상으로 재현했다. 이처럼 풍속화 속 장면을 영상화하는 데에는 어떤 어려움이 따랐을까?
# 뜨거운 지혈도 문제
‘천산대렵도’는 고려 제31대 공민왕(恭愍王:1330~1374)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24.5×21.8㎝ 크기에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두 무인의 모습을 담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영화 ‘쌍화점’(감독 유하) 제작진은 이 장면을 경기도 화성 공룡알 화석지에서 찍었다. 지난 9월9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다 마쳤다. 촬영에 앞서 제작진은 그림처럼 초원이 우거진 공간을 찾기 위해 경기도 일대를 뒤졌다.
촬영에 앞서 조인성에게는 특별한 말이 주어졌다. 극중에 왕(주진모)이 건륭위 수장(조인성)에게 선물한 말이다. 말 이름은 ‘일호’. 마장마술 선수용으로 훈련된 8살 난 말이다. 승용마 럼블렛 종으로 독일산 갈색 명마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가격이 수입차에 버금가는 5000만원을 호가한다. 말을 타는 사람의 호흡에 예민하게 반응, 조인성은 이 점을 감안해 촬영 내내 말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영화 \'쌍화점\'에서 영상으로 재현한 \'천산대렵도\'.
두 배우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제작진 사이에 긴장감이 팽배했다. 질주하면서 고삐를 놓고 활을 쏴야 했고, 이 과정에 낙마 사고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배우 가운데 특히 조인성이 걱정을 많이 샀다. 캐스팅이 되자마자 3개월 이상 승마 연습을 했고, 이때 고삐를 놓고 타는 훈련을 거듭했지만 불상사를 전면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진모는 ‘무사’ ‘비천무’ 등을 통해 이미 숙련된 실력을 지녀 걱정을 덜 샀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같은 우려는 31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때문에 더욱 증폭됐다. 뜨거운 기운으로 인해 말과 배우의 컨디션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지여서 말과 배우, 스태프 모두 힘들었지만 촬영은 아무 사고 없이 끝났다.
신윤복의 \'이부탐춘\'.
# 나무 만들어 심어
‘이부탐춘’(二婦探春) ‘단오풍정’(端午風情). 영화 ‘미인도’(감독 전윤수)에 영상으로 재현된 신윤복의 풍속화다. ‘이부탐춘’은 봄날 한 쌍의 개가 교접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한 청상과부와 몸종, ‘단오풍정’은 개울가에서 목욕하는 반라의 여인들과 바위 틈에 숨어서 넘겨다보는 승려의 모습을 그렸다. ‘미인도’에선 두 그림에 얽힌 일화를 연상할 수 있다.
제작진은 두 장면을 그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전국을 뒤진 끝에 ‘이부탐춘’은 안동의 군자마을, ‘단오풍정’은 안동의 만휴정 인근에서 찍었다.
영화 \'미인도\'에서 영상으로 구현한 \'이부탐춘\'.
구현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부탐춘’의 경우 두 여인이 앉아 있는 나무는 제작진이 만들어 심었다. 담장, 잔디 등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보완했다. 개구멍도 이때 만들었다. 한 애견 업체의 도움을 받아 풍속화 속의 개를 빼닮은 개를 추천받았지만 교접 장면은 실연시키는 게 불가능해 두 개가 교미하는 것처럼 묶은 뒤에 찍고, 끈은 후반작업 때 CG로 지웠다. 두 개는 어미와 새끼지간. 제작진은 두 개를 출연시키는 데 70만원을 지불했다.
‘단오풍정’ 장면 재현은 네 장면으로 나눠 찍은 CG로 합성하는 등 더욱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목욕하는 네 기녀, 담소를 나누는 세 기녀, 술·안주 등을 이고 오는 기녀, 바위 틈에서 훔쳐보는 어린 두 승려의 모습 등을 각각 찍은 뒤 CG로 합성했다. 합성작업 때 각 장면의 이질감을 없애기 위해 시간·광량 등을 같은 조건 아래에서 작업했다. 세 기녀 뒤로 보이는 나무는 다른 나무를 찍어 휘게 하는 CG작업을 거쳐 심은 것이다.
설화(추자현)와 함께 목욕장면을 재연한 기녀 6명은 배우 지망생들이다. 전윤수 감독은 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주변을 통제하고 참여 스태프도 최소화했다. 이틀 동안 물장구를 치며 더위를 식힌 이들은 출연료로 각각 300만원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