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꿈꾼 사랑/ 평생을 꿈꾼 소리/ 평생을 꿈꾼 영화/ 임권택 감독 100번째 작품 千年鶴/ 가슴에 묻은 그리움과/ 바람에 흘러간 소리가/ 마침내 만나 날아오른다/ 평생에 남을 千年鶴/ 임권택 감독 100번째 영화, 4월의 감동.’
오는 12일 개봉되는 ‘천년학’ 예고편을 장식하는 자막이다. 대사·영상·음악과 함께 ‘천년학’이 어떤 작품인지를 짧은 시간(2분3초)에 가늠하게 한다.
이 예고편은 정윤철 감독이 만들었다. 정감독은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호주국립영화학교에서 편집을 전공했다. 데뷔에 앞서 ‘살인의 추억’ 티저 예고편, ‘와일드 카드’ 티저·본 예고편, 데뷔 후 ‘분홍신’ 티저·본 예고편을 만든 바 있다.
정감독이 ‘천년학’ 예고편을 만든 건 이같은 경력과 함께 ‘말아톤’이 계기가 됐다. ‘말아톤’은 정감독의 데뷔작. 다른 감독이 만든 영화를 안 보는 편인 임감독이 이 영화는 봤다. ‘춘향뎐’과 ‘하류인생’의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다.
“지독하게 끈질긴, 독한 감독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자리를 한번 갖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그 감독이 ‘천년학’ 예고편을 만들고 싶다는 거요.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막막했던 차여서 선뜻 좋다고 했지요.”
정감독이 ‘천년학’ 예고편을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두 가지. “감독님의 100번째 작품인 만큼 소중한 인연을 맺고, (흥행이) 잘되는 데 일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정감독의 본 예고편 제작 원칙은 오인·과장 금지. 정감독은 이에 따라 영화를 충실하게 소개하는 데 중점을 뒀다. 완성된 예고편을 본 임감독은 “매우 흡족하다”면서 예고편에 얽힌 추억을 들려줬다.
“내가 조감독 시절에 조감독이 맘먹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예고편 편집이오. 내가 잘했는지 예상보다 데뷔를 빨리 했어요.”
예전에는 이처럼 예고편을 조감독이 만들었다. 편집하고 남은 필름으로. 이와 달리 요즘은 대부분 예고편 전문회사에서 만든다. 촬영한 필름으로, 본 필름과 예고편을 위해 찍은 필름을 섞어서, 나아가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영화의 컨셉트를 차용해 새로 만들기도 한다. 하나만 만드는 게 아니다. 개봉 서너달 전부터 내보내는 티저 예고편(1분 안팎)과 개봉 한달 전부터 트는 본 예고편(2분 안팎) 등을 만든다. 주요 관객층인 영상세대를 겨냥해 영화를 ‘고지’하고 관람을 ‘유인’하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시초는 ‘접속’(1997)으로 손꼽힌다. 이 영화 예고편은 홍보사 R&I 커뮤니케이션(현 튜브픽처스 영상제작팀)에서 만들었다. ‘러버스 컨첼토’라는 삽입곡에 맞춰 한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만든 이 예고편이 히트를 치고 영상산업이 고양되면서 전문회사와 전문인력이 속속 생겨났다. 4월 현재 하하하·그루브·존앤룩·도날드시럽·모팩·픽셀 등 30여개 회사가 경쟁하고 있다. 이들은 예고편 제작에 적게는 4000만원, 많게는 1억원 이상을 받고 있다.
그간 소개된 예고편 가운데에는 화제작이 많다. ‘집으로…’는 깜찍한 그래픽으로, ‘질투는 나의 힘’은 정적인 드라마와 달리 발랄한 게임 형식으로, ‘해안선’은 공식 스틸이 아니라 촬영을 앞두고 장동건이 받은 실전 훈련 때 찍은 사진으로, ‘처녀들의 저녁식사’ ‘주유소 습격사건’ ‘어린 신부’ 등은 애니메이션으로, ‘낭만자객’ ‘역전에 산다’ ‘어깨동무’ 등은 내레이션 기법으로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시월애’(2000)는 티저 예고편 시대를 열었다. 전지현과 이정재 편, 두 종류로 제작된 티저 예고편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 본 예고편은 만들지 않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스태프들의 인터뷰로 구성한 티저를 내놓은 뒤 뛰어난 사운드를 자랑했던 본 예고편은 극장에서 스태프를 대상으로 시사회를 갖고 이를 보완하는 프린트 작업을 세번이나 했다.
이밖에 ‘인디안 썸머’ ‘싱글즈’ ‘S다이어리’ ‘말죽거리 잔혹사’ 등은 별도로 찍은 티저 예고편으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외화의 스컬리와 멀더의 목소리를 패러디한 티저 예고편으로, ‘목포는 항구다’는 ‘챔피언’의 비주얼과 ‘살인의 추억’ 홍보 카피를 패러디한 본 예고편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고조시켰다. 예고편은 진화한다.
〈배장수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