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 스타들의 데뷔시절](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6/05/7f0684a.jpg)
듬직한 외모와 연기력으로 주목받아온 이두일(43)이 마침내 영화 주인공을 맡았다. 1988년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감독 석래명)로 데뷔한 지 약 20년 만이다.
그의 첫 주연작은 ‘버텨라 구창식’. 채권과 채무 관계로 얽힌 사람들의 애환에 러브 스토리를 가미한 코미디 영화다.
이두일은 빚에 쪼들리는, 억대 연봉을 꿈꾸는 채권 추심위원 역을 맡았다. 류현경·김익태·손병호·안내상 등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에서 연출수업을 받은 홍현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두일은 박중훈·최재성·최수지가 주연을 맡은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에서 과대표 역을 맡았다. 이후 ‘비명도시’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세상 밖으로’ ‘돈을 갖고 튀어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비트’ ‘찜’ ‘진짜 사나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이재수의 난’ ‘무사’ ‘이대근, 이댁은’ 등 약 20편의 장·단편에서 조·단역을 맡았다.
이처럼 단역으로 출발, 훗날 대성한 대표적인 배우로는 조재현·이문식·송강호·설경구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1996년에 데뷔했다. 조재현(41)은 유세기 감독의 ‘매춘2’에서 조역 호스티스의 동생, 이문식(40)은 김용태 감독의 ‘미지왕’에서 주인공 왕창한(조상기)이 이용하는 택시 기사, 송강호(40)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주인공(김의성)의 친구인 작가, 설경구(39)는 장선우 감독의 ‘꽃잎’에서 여주인공(이정현)의 오빠로 출연했다.
한석규·황정민·김수로·장동건·차인표·김주혁 등도 출발은 미미했다. 이들이 첫 출연작에서 맡은 역은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1990년 KBS 성우로 데뷔, 91년 MBC 탤런트로 새 출발한 한석규(42)의 첫 출연작은 베스트셀러극장 ‘다리’였다.
한석규는 가마꾼으로 출연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듯 동기들과 함께 가마꾼 역을 맡은 한석규는 이 때부터 남달랐다. 자신이 전후좌우 어디에 위치한 가마꾼인지 어떤 행차인지 등을 묻고 준비를 철저히 한 뒤 연기에 임했다. 춘사 나운규의 첫 배역이 가마꾼이었던 점을 상기, 그처럼 큰 인물이 되겠다면서.
차인표(39)는 첫 출연작이 MBC ‘집중 퀴즈테크’였다. 진행자가 낸 문제를 재현해 보여주는 영상물에 귀신으로 나왔다. 장동건(35)의 첫 드라마 출연작은 MBC 드라마 ‘아들과 딸’이었다. 장동건은 갓 입사한 동기들과 함께 나무(木)로 출연했다. 주인공(최수종)이 지나가는 길옆에 숨어 나뭇가지를 들고 있었다. 이에 앞서 그가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작품은 세제 광고였다. 여주인공(박순애) 뒤에서 “참 잘 빨려요”라고 말하는 인물인데 방송에는 그의 몸 일부와 손만 나왔다.
이밖에 유해진(36)은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에서 주인공(최민수)와 다투는 트럭 운전수로 신고식을 치렀다. 김주혁(34)은 SBS 드라마 ‘홍길동’에서 뇌물로 받은 굴비를 들고 지나가면서 좋아하는 포졸, 김수로(34)는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에서 경찰서 정문에 서 있는 전경으로 데뷔했다.
장동건처럼 한석규·조재현·이문식 등은 데뷔작을 통해 남다른 경험을 했다. 한석규가 나오는 가마 행차 장면은 먼 거리에서 롱 쇼트(long shot)로 촬영돼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온 가족과 함께 ‘다리’를 시청한 한석규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야 했다.
‘매춘2’에서 누나의 죽음에 통곡하는 인물을 맡은 조재현은 눈물이 나오지 않아 곤혹을 치렀다. 이로인해 “어디서 이런 ××를 데려왔느냐”고 자신을 소개해준 친구까지 혼나게 만들었다. 친구는 이 영화의 스크립터였다.
이문식은 ‘미지왕’에 이어 배창호 감독의 ‘러브스토리’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동네 건달, 김성수 감독의 ‘비트’에서 동사무소 직원 역을 맡았다. 이 가운데 ‘비트’로 오해를 샀다.
김성수 감독이 연극을 보러 왔다가 이문식을 소개하는 팸플릿에 ‘비트’가 적혀 있는 걸 발견한 뒤 제작진에게 “내가 ‘비트’ 감독인데 이문식이 어떤 역을 맡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홍보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배우들은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적은 배역은 없다’는 말을 경구(警句)로 삼고 있다. 유명 배우들은 무명 때부터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철저하게 실천한 이들이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