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화동\'의 한 장면.
‘에로영화’는 성애를 주요 내용으로 다룬다. 에로스(eros)와 에로티시즘(eroticism)에 근간을 둔 에로영화에 대해 한 영화인은 ‘애로(愛路)영화’라고 풀이했다. 통속적인 사랑의 길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에로영화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극장용 한국영화로는 ‘불후의 명작’(2004)과 15일 개봉되는 ‘색화동’ 등이 있다.
# ‘박아사탕’ ‘올누드보이’
‘개같은 날의 정사’ ‘용의 국물’ ‘접촉’ ‘모텔 선인장에서 생긴 일’ ‘마님 사정 볼 것 없다’ ‘포르노 그것이 알고 싶다’…. 한때 눈길을 끌었던 에로 비디오 영화 제목이다. 이처럼 에로 비디오물 제목은 화제의 영화·드라마 등의 그것을 패러디하는 게 유행을 이뤘다. ‘악녀는 끈팬티를 입는다’ 등 요즘도 화제작 제목을 변용한 영화를 곧잘 발견할 수 있다.
‘불후의 명작’과 ‘색화동’에는 이런 현상을 반영한 영화가 소개된다. ‘박아사탕’ ‘올누드보이’ 등이다. ‘박아사탕’은 심광진 감독의 ‘불후의 명작’, ‘올누드보이’는 공자관 감독의 ‘색화동’에 나오는 극중 영화제목이다. 두 영화는 각각 ‘박하사탕’과 ‘올드보이’ 제목을 패러디하면서 내용도 응용했다.
‘불후의 명작’에서 ‘박아사탕’제작자(백윤식)는 감독(박중훈)에게 작품의 의미 등을 역설한다. 이때 제작자는 ‘박하사탕’에서 영호(설경구)가 철길에 올라가 “돌아가고 싶다”고 절규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 과거와 달리 성생활에 어려움이 많은 남자주인공이 “다시 하고 싶다”고 울부짖는 모습을 열연해 보인다.
‘올누드보이’의 여주인공 이름은 오대순(정소진)이다.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에서 따왔다. 오대순은 여고생 때 혀를 잘못 놀려 그 누군가를 성불구자로 만들었다. 이후 누군가에 의해 골방에 15년 동안 감금돼 군만두만 먹으며, TV드라마를 보며 자위를 하면서 모진 세월을 견뎌낸다. 이와 같은 내용은 ‘올누드보이’의 황감독(김동수)이 스태프들에게 여주인공의 탄생 배경과 줄거리를 설명하는 장면을 통해 소개된다.
# 움직이는 야한 그림
‘색화동’(色畵動). 코믹에로를 표방한 작품으로 에로영화의 애로(愛路)와 애로(隘路)를 통해 성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중성을 풍자했다. 에로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독립영화제(2006)에 초청받아 주목을 받았다. 이에 힘입어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는 행운을 안았다. 제목의 한자는 ‘움직이는 야한 그림’이라는 뜻을 지녔다.
이 영화는 단국대 영화과 출신인 공자관 감독(30)이 각본·연출을 맡았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었던 그가 제대한 뒤 충무로의 현실을 직시, 웰 메이드 상업영화를 만들자면서 찾아간 에로영화사에서 3년여 동안 겪은 경험담을 영상화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하지마’ ‘깃발을 꽂으며’ ‘이쁜이’ ‘로또걸’ 등이 있다.
그의 화신은 ‘올누드보이’의 조감독(조재완).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뒤 백수로 지내던 중 에로영화사를 찾아간 인물이다. 드라마가 살아 있는 남다른 에로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열악한 환경과 타성에 젖은 황감독의 독선으로 물거품이 된다. 서로의 프로정신에 호감을 느끼면서 싹튼 조감독과 여배우의 사랑도 금이 간다.
# 이보다 열악할 수 없다
‘색화동’은 촬영을 12회 나갔다. 공감독의 대표작인 ‘깃발을 꽂으며’는 3회만에 끝냈다. ‘색화동’은 1억3000만원, ‘깃발을 꽂으며’는 1500만원이 들었다. ‘색화동’에는 장편 에로영화가 네댓 번의 촬영과 1000만원대 제작비를 들여 완성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장소와 이동거리, 출연·제작진을 최소화한 뒤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행하는 것이다.
공자관 감독은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 캐스팅을 우선 손꼽았다. “유명배우와 무명 등 수십명을 섭외한 끝에 신인 사빈(본명 정소진)을 캐스팅했다”면서 “촬영에 들어간 뒤에는 출연·제작진의 열정과 날씨 등 하늘이 도와준 덕분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극중 영화사는 실제로 유명한 비디오영화사”라며 “이 영화사가 한달 뒤에 폐업한다는 말을 듣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이만한 기회조차 갖기 어려워진다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토로했다. 심광진 감독은 “에로영화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인 만큼 ‘공사’한 걸 흘깃 보여주고 싶었는데 당사자들이 기겁을 하는 데에다 등급심의를 고려해 철저히 가려야 해 엔지가 속출하는 바람에 2분 분량을 3일 동안 찍었다”고 기억했다.
이렇듯 에로영화의 성애 장면도 여느 영화처럼 남녀 배우가 공사(붕대·테이프 등을 이용해 국부를 가리는 작업)를 한 다음에 찍는다. 노출이 심한 의상 사이로 엿보이는 여배우의 가슴도 사전 작업을 통해 부풀려진다. 가슴 가운데에 골이 잡히고 드러나도록 테이프를 여배우의 어깨와 허리에 Ⅹ로 감고, 몰드 캡이 들어 있는 브래지어를 착용한 다음 가슴 밑부분이 도톰하게 살아 있도록 브래지어 안에 살구색 원단 등을 집어넣고, 탄력반창고를 사용해 배우가 움직일 때 가슴이 자연스럽게 출렁이도록 조정한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