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막아라. 최근 개봉된 ‘쏜다’의 촬영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쏜다’는 이른바 버디무비(Buddy Movie) 화제작.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게 된 모범 공무원 만수(감우성)와 큰 범죄를 숨기기 위해 작은 죄를 저질러온 전과 15범 철곤(김수로)이 함께 벌이는 하루 동안의 일탈을 코믹하게, 화끈하게 그렸다. 박정우 감독 등 제작진은 현장감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산과 서울의 거리를 막고 촬영하느라 여간 애를 먹지 않았다.
만수와 철곤의 행각이 최후를 맞는 하이라이트 장면이 대표적이다. 만수가 부도덕한 국회의원(장항선)의 아들 태웅(김혁)과 도심에서 벌이는 카레이싱 장면도 만만찮았다.
하이라이트 장면은 서울이 배경이지만 촬영은 부산에서 했다. 10여분을 담기 위해 해운대 벡스코 앞 왕복 12차로 도로에서 1주일 동안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찍었다.
당국은 이 시간 동안 거리를 전면 통제했고, 이에 앞서 버스 노선 등을 변경했다. 제작진은 500여명의 보조출연자와 100여대의 경찰차, 각종 특수장비 등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정철우 PD는 “부산영상위원회와 해운대 구청·경찰서, 그리고 시민의 협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며 “허락을 받아내는 데 걸린 2개월 동안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만수와 태웅의 카레이싱 장면 역시 배경은 서울이지만 주로 부산에서 찍었다. 부산에서 약 30일 동안 찍은 장면에 동작대교·반포대교·남산터널·남대문 등에서 4일 동안 찍은 장면을 정교하게 편집, 서울 거리로 둔갑시켰다. 촬영 당시 부산 및 서울영상위원회·경찰청 등의 지원을 받았다.
‘그놈 목소리’의 거리 장면 촬영도 서울영상위원회·경찰청 등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동호대교, 압구정동 현대백화점과 충무로4가 대한극장, 잠실 롯데월드 앞 등 40여곳의 거리를 전면 혹은 부분 통제하고 찍었다. CG작업을 통해 간판 등을 1991년 당시 것으로 대체했다.
이 가운데 롯데월드 앞 거리 장면 촬영에는 약 20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들었다. 가로등의 밝기를 보완하기 위해 각 가로등에 전등을 하나씩 더 단 게 화근이었다. 송파구청 직원이 촬영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가로등에 임의로 전등을 다는 것은 불법이라며 무조건 철거를 명령, 당일 촬영을 취소하고 다시 허가를 받아 찍어야 했던 것이다.
오는 7월 개봉될 예정인 ‘화려한 휴가’의 거리·건물 장면은 대규모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화려한 휴가’는 영문도 모른 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민군이 된 사람들의 시각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하는 작품. 현재의 금남로 등이 1980년 당시의 그곳이 아니고 거리 통제도 불가능해 광주시 북구 오룡동 첨단단지 1만5000평에 30억원을 들여 300ｍ쯤 되는 6차로 금남로와 당시 건물 등을 재현한 뒤 찍었다. 금남로 이면 거리와 골목길은 전주·군산·담양 등지에서 담았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신문이나 5·18 재단에 있는 사진을 참고했다.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있던 분들에게 건물의 색깔 등을 물었다. 도청은 실제 크기의 90~100%, 나머지는 85%로 만들었다. 폐차장을 뒤져 당시 버스 5대를 가져왔고, 한국에 2대가 남아 있는 포니1은 주인들이 애지중지 아끼는 바람에 임대를 포기, 이집트에서 5대를 역수입했다. 광주시는 이곳을 보존, 관광지로 개방할 계획이다.
‘오아시스’의 거리장면도 역사적 가치를 지녔다. 청계 6가에서 7가 방향 2차로 위에서 종두(설경구)가 공주(문소리)를 안고 춤을 추는 장면으로 개통된 지 3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청계고가도로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은 제작진이 서울시와 경찰청을 상대로 6개월이 넘게 씨름을 벌였고, 촬영 이틀 전인 2002년 5월17일에야 허가를 받아 가까스로 찍었다. 오전 3시부터 6시까지 외곽방면 교통을 전면통제하고 택시·승합차·승용차 등 100여대를 동원해 정체 상황을 연출했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