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촬영보다 힘든 ‘장소 섭외’](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2/07/6a0889d.jpg)
영화는 영상예술, 연극·뮤지컬 등은 공연예술로 분류된다. 특정 공간을 장치한 무대에서 이야기를 펼쳐내는 공연예술과 달리 영상예술은 현장 촬영을 거쳐 일반에 공개된다.
따라서 영화 속 장소는 현장성이 매우 중요하다. 드라마의 사실감이 현장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진이 최적의 장소를 이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발품을 팔고, 거금을 치르고, 애걸복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월 극장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놈 목소리’는 그 실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경구·김남주·강동원 주연의 ‘그놈 목소리’는 실화를 담았다. 16년 전에 발생한 초등학생 유괴사건을 기초로 했다. 아이는 사건발생 44일 만에 사채로 발견됐고, 유괴범은 87차례의 협박전화를 했다. 총인원 3만명의 경찰이 동원됐지만 유괴범은 윤곽조차 파악하지 못한, 지난해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을 소재로 했다.
박진표 감독은 사건이 벌어졌던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촬영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아이가 유괴되는 곳인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의 주민들이 외관 촬영조차 반대한 것이다.
제작진은 대안을 강구했지만 비슷한 곳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다소 긍정적이던 곳도 영화 내용을 들은 뒤에는 돌변, 말도 못 꺼내게 했다. 한달 만에 현대아파트 측의 동의를 받아냈지만 이내 무산되고 말았다. 첫 촬영을 마친 뒤 주민들의 원성이 고조된 것이다. 처음에 찍은 장면과의 연결을 고려, 두차례 촬영을 더해야 하는 제작진은 애간장이 탔다. 시간배경상 가을이 짙어지기 전에 촬영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반상회에 참석해 무릎을 꿇기도 했고, 관리실과 주민대표를 찾아가 가가호호 방문해서 일일이 허락을 받아내겠다는 읍소도 했다. 한달 동안 이같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다시 허락을 받아냈다. 약속한 대로 최소의 인원을 투입, 주민들이 촬영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작업을 끝냈다.
이같은 고역은 시작에 불과했다. 동호대교 앞, 동호대교를 건너 옥수동으로 가는 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앞, 롯데월드 사거리, 대한극장 앞 등 서울시내 40여곳을 배경으로 촬영하는 동안 산전수전을 치렀다. 영화의 취지에 공감한 서울시청과 경찰청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또 다른 고역을 치렀다. 어느 곳 하나 16년 전의 건물·거리 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멀티플렉스로 바뀐 대한극장은 맞은편의 극동으로 대체하는 등 수정을 거듭했다. 주차장이나 도로 장면 등은 16년 전 당시 자동차 12대를 구입하고, 옛날 자동차 동호회 등의 도움을 얻어 촬영했다. 촬영을 마친 뒤에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거리의 간판을 모두 예전 것으로 수정했다.
과정이야 어떻든 특정 장소를 섭외, 한 곳에서 촬영을 마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유괴·살인 등 부정적인 내용이 담기는 영화의 경우 장소를 섭외하는 데 남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일례로 ‘여우계단’의 경우 공포영화라는 점 때문에 학교 측의 협조를 받는 데 고역을 치렀다. 결국 교내 조소실·계단·복도 등은 옛 수도여고, 기숙사 외관(내부는 세트)과 여우계단은 전주공전, 무용실은 선화예고, 현관 로비는 영락고교에서 찍었다.
영화인들은 말한다. “장소 섭외가 끝나면 촬영은 절반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극중 상황에 부합하는 장소를 섭외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영화는 영상예술이기에 앞서 1차노동의 예술이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