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잇따라 개봉된다. 박광수 감독의 ‘눈부신 날에’와 권용국 감독의 ‘파란 자전거’가 오는 19일, 박규태 감독의 ‘날아라 허동구’가 1주일 뒤인 26일, 장진 감독의 ‘아들’이 또 한 주 후인 5월3일에 선보인다.
네 편의 영화는 큰 테두리에서 닮았다. 아버지와 자식 간의 남다른 사랑 이야기를 각기 다른 작법으로 그렸다. 이처럼 소재가 닮은 영화 4편이 잇따라 개봉되는 건 흔치 않다.
네 영화 가운데 ‘파란 자전거’와 ‘날아라 허동구’는 특히 유사하다. ‘파란 자전거’는 손이 불편한 아들(양진우와 안재성)과 자전거포를 하는 아버지(오광록)의 삶을, ‘날아라 허동구’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최우혁)과 치킨집을 하는 아버지(정진영)의 일상을 다뤘다. ‘파란 자전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부자간의 드라마 외에 동물원의 사육사가 된 아들의 러브 스토리를 더했고, ‘날아라 허동구’는 오롯이 두 부자의 일상을 다룬 점이 다르다. 두 부자의 캐릭터도 다소 차이가 있다.
이렇듯 닮은 영화가 같은 시기에 제작·개봉되는 건 드물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싸이렌’과 ‘리베라 메’, ‘북경반점’과 ‘신장개업’, ‘학생부군신위’와 ‘축제’, ‘춘향전’과 ‘성춘향’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봉돼 흥행 대결을 벌였다.
‘싸이렌’(감독 이주엽·강한영)과 ‘리베라 메’(양윤호)는 재난영화다. 소방관들이 화마와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두 영화는 2000년 11월11일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싸이렌’이 2주 앞선 10월28일에, ‘리베라 메’는 예정대로 11월11일에 개봉됐다. 관객들의 평가가 엇갈린 가운데 ‘리베라 메’가 판정승을 거두었다.
‘북경반점’(김의석)과 ‘신장개업’(김성홍)은 자장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두 작품 모두 쇠락해가는 중국집의 이야기를 다뤘다. ‘북경반점’은 드라마, ‘신장개업’은 코미디로 풀었다. ‘북경반점’은 99년 4월24일, ‘신장개업’은 1주일 뒤인 5월1일에 개봉됐다. 두 작품 모두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학생부군신위’(박철수)와 ‘축제’(임권택)는 상가(喪家) 이야기를 다뤘다. 죽음과 장례식이 갖는 한국적 의미를 조명했다. ‘학생부군신위’는 한 노인의 5일장을 엄숙하면서도 익살스럽게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풀어냈고, ‘축제’는 치매를 앓다가 운명한 노모의 3일장을 정연한 스토리가 없는 에피소드 위주로 엮었다.
두 영화가 가운데 먼저 촬영에 들어간 작품은 ‘축제’이다. 그러나 ‘학생부군신위’가 촬영을 빨리 끝내고 개봉도 96년 3월1일에 먼저 했다. ‘축제’는 같은 해 6월6일에 개봉됐다. 이에 맞춰 ‘학생부군신위’가 재개봉돼 화제를 낳았다. 두 영화 모두 국제영화제 등 해외에서는 주목을 끌었으나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다.
‘춘향전’과 ‘성춘향’은 61년도 작품이다. ‘춘향전’은 홍성기 감독이 김지미를, ‘성춘향’은 신상옥 감독이 최은희를 주연으로 내세워 흥행대결을 벌였다. ‘춘향전’은 1월18일, ‘성춘향’은 1월28일에 개봉됐다. 드라마와 영상미가 더 돋보인 ‘성춘향’이 판정승을 거뒀다.
참고로 ‘춘향전’은 한국영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23년 일본인이 연출한 ‘춘향전’을 필두로 ‘방자와 향단이’ 등을 포함해 임권택 감독이 2000년에 선보인 ‘춘향뎐’까지 모두 17편이 제작됐다. 35년 이명우 감독이 연출한 ‘춘향전’은 한국영화 최초의 발성영화이고, ‘춘향전’과 ‘성춘향’은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제작된 첫 영화다. 이성구 감독이 연출한 71년작 ‘춘향전’은 국내 유일의 70㎜영화다. 임감독의 ‘춘향뎐’은 한국영화 가운데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동일한 소재의 영화 기획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같은 시기에 제작·개봉되는 건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상도(商道)가 거론되기도 했다. 서로 먼저 기획했다는 주장과 소재만 같을 뿐 다른 영화라는 반론이 나돌았다. 4월 중순부터 5월 초에 잇따라 개봉되는 네 영화는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배장수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