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감독도 아부해야 하는 배우‘犬公’](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3/06/6a0784a-center.jpg)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는 두 마리 명견이 나온다. ‘용구’와 ‘횰이’다. 용구와 횰이는 심씨(천호진) 가족의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를 낳는다. 둘이 사랑을 하자 술에 취한 횰이의 주인이 분개하고, 심씨 가족이 이에 맞서 몸을 사리지 않는 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사분오열이던 심씨 가족은 하나가 된다.
제작진은 두 마리 개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이 캡틴 김대출’ 등의 개 조련을 맡은 서라벌대 애견관리학과의 박순태 교수가 추천한 수십 마리를 심사, 용구와 횰이를 캐스팅했다.
용구(5살)는 토종 순수 진돗개. 본명이 ‘쫑’으로 가격은 500만~600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여름 제1호 인명구조 진돗개가 될 기회를 맞았으나 사람을 찾던 중 잠시 본분을 잊고 산에 사는 쥐를 쫓는 바람에 탈락했다. 횰이(2살)는 스탠더드 푸들. 본명이 ‘써니’로 3000만원 이상의 시가를 지녔다. 각종 대회를 휩쓸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고 주말에 쇼도 하는 명견이다.
첫 촬영 장면은 바람이 나 집을 나갔던 용구가 횰이를 데리고 귀환하는 광경. 그런데 용구의 윤기나는 흰색털이 컨셉트에 맞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분장팀은 부랴부랴 털을 깎고 노란 물을 들이고 값비싼 맥 파운데이션을 발라 똥개로 둔갑시켰다.
이어 용구와 횰이가 사이좋게 밥을 먹는 장면을 찍었다. 그러나 둘이 밥그릇 싸움을 벌여 촬영은 중단됐다. 제작진은 겁에 질린 횰이를 다독거리고 서둘러 밥그릇 하나를 더 구해와 햄과 참치를 넣은 밥을 준비했다. 둘이 한 밥그릇을 놓고 사이좋게 먹는 장면은 부득불 각각 자기 밥을 먹는 것으로 수정 촬영됐다.
두번째 장면은 이들이 밤에 강변에서 사랑을 하는 광경. 찌는 듯한 더위와 야생 모기, 뜨거운 조명, 구경하러 몰려든 시민들 등은 용구와 횰이가 사랑을 하는데 부적격했다. 밥그릇 싸움에 따른 기억이 남아 있는지 횰이가 용구를 반기지 않고 예민하게 굴었지만 연인다운 모습은 그럭저럭 촬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용구와 횰이가 사랑하는 장면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박순태 교수는 배란기 개한테 나오는 피를 횰이의 그곳에 묻힌 다음 용구에게 맡게 했다. 그런 뒤 시작한 촬영은 이내 중단됐다. 횰이가 거세게 거부하면서 둘 사이에 또 싸움이 난 것이다. 둘을 다독거려 몇 차례 더 찍었지만 제작진은 원하는 장면은 담을 수 없었다.
횰이의 바쁜 스케줄 때문에 며칠 뒤에 마련된 재촬영 때에도 마찬가지. 배란기 초기를 맞은 횰이의 얼굴에는 예민함이 역력했다. 제작진은 “이 촬영이 얼마짜리인지, 시간당 얼마가 날아가는지 아느냐”고 개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까지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조금씩(많이 주면 역효과를 낳는다) 주면서 다독거려 촬영에 돌입했다. 카메라도 두대를 준비했다. 그러나 횰이의 반항은 더욱 극렬했다. 수십차례 찍은 끝에 중단, 그간 찍은 것을 5초 정도로 편집한 뒤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개가 비중 있게 나온 우리 영화는 ‘꼬리치는 남자’ ‘마음이…’ ‘마이 캡틴 김대출’ 등이다. ‘꼬리치는 남자’의 개는 미국영화 ‘빙고’의 주인공을 맡은 골든 리트리버 종으로 할리우드에서 공수해 왔다. ‘마음이…’와 ‘마이 캡틴 김대출’의 진돗개와 잡종은 국산으로 치열한 심사 끝에 선정됐다.
‘꼬리치는 남자’의 개는 1995년 당시 여주인공 김지호에 맞먹는 30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조련사 2명에 욕실을 겸비한 전용 숙소에 자동차도 제공받았다. 나이가 8살로 고령인 점을 고려해 연습 촬영을 할 때 개는 쉬고, 연출부가 개를 대신해 연기를 했다. 조련사는 만약의 경우를 감안해 이 개를 빼닮은 아들도 데려왔다. ‘가문의 영광’에서 대서(정준호)가 진경(김정은)에게 선물한 강아지는 촬영 이틀 뒤 죽었다. 사인은 스트레스와 과로로 알려지고 있다. ‘마음이…’의 개는 출연료로 5000만원을 받았다. 용구와 횰이는 ‘좋지 아니한가’의 제작비를 감안한 주인의 배려로 ‘마음이’의 개보다 훨씬 적은 출연료를 받았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