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작 A to Z

입력 : 2008.10.05 22:21

‘작품성·대중성·최초 공개 亞 영화’ 등 잣대

김기덕 ‘빈집’은 제안 받고도 베니스에 뺏겨

개막작은? 폐막작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열면서 주최측이 겪는 큰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개·폐막작을 선정하는 것이다. 부산영화제를 열고 닫은 개·폐막작 A to Z.

# 피가 마르는 심정

‘스탈린의 선물’ ‘나는 행복합니다’. 올해 제 1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작이다. 개막작 ‘스탈린의 선물’(감독 루스템 압드라쉐프)은 카자흐스탄 영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꼬마와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인종·세대·종교를 초월한 사랑과 신뢰를 담았다. ‘나는 행복합니다’(감독 윤종찬)는 한국 영화.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신병에 걸린 한 청년과 그를 바라보는 간호사를 내세워 상처받은 영혼의 소통을 그렸다.

‘스탈린의 선물’은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지난 5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가 발견했다. 1차 편집된 DVD를 갖고 귀국, 논의를 거쳐 7월에 개막작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감독이 러시아에서 가진 후반작업 때 정성을 기울이면서 개막에 맞추는 게 미지수였고, 프린트가 늦게 도착한 것이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다”며 “감독·배우가 유명하지 않고 국내에 생소한 카자흐스탄 작품인데 예매 시작 후 최단 시간에 매진(1분30초)됐고 관객들 반응도 뛰어나 흡족했다”고 밝혔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7편의 후보작 가운데 선정됐다. 후보에 오른 작품은 한국 영화 4편, 아시아 영화 3편. 이상용 한국 영화 프로그래머는 “한국 영화가 위기를 맞아 편수는 줄었지만 전반적인 완성도가 돋보였다”면서 “특히 소규모로 제작된 필름·HD영화 가운데 알찬 작품이 다수여서 선정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스탈린의 선물’(위), ‘나는 행복합니다’. 영화제 측은 “초청작에 따라 영화제의 성패가 좌우된다”면서 “특히 개·폐막작이 선정되면 한시름을 놓는다”고 토로했다.

# 입맛대로 고를 수 없어

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작은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선정한다. 아시아 영화여야 하고, 월드 혹은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세계 최초 혹은 제작국 외 최초 공개)여야 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최측은 이같은 선정기준에 딱 맞는 작품을 고르는 게 쉽지 않다. 마땅한 작품이 있어도 때맞춰 상영이 가능해야 하고, 감독·제작자가 주최측 제안에 호응해야 하는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일례로 제9회 영화제(2004)의 경우 ‘2046’(홍콩) ‘시티즌 독’(태국) ‘주홍글씨’(한국) ‘세계’(중국) ‘피와 뼈’(일본) ‘빈 집’(한국) 등을 놓고 진통을 치렀다. ‘2046’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이란 점이 걸렸다. 그러나 칸 출품작은 영화제 일정에 맞춰 끝낸 미완성본. 부산에 오는 건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이 재촬영을 하고 후반작업도 새로 한 완전 완성본이란 점이 고려됐다. 이에 화답하듯 왕감독은 북미 최대의 영화제로 부상,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위협하고 있는 토론토국제영화제의 초청을 사양하고 부산을 택했다. ‘시티즌 독’ ‘주홍글씨’ 등은 폐막에 맞추는 것도 빠듯했다. 부산 상영이 어려워 보였던 지아 장커의 ‘세계’는 서둘러 완성, 부산에 앞서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갔다. 김기덕 감독은 ‘빈 집’이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를 원했지만 주최측은 그의 전작 ‘해안선’이 제7회 개막작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빈 집’은 베니스 경쟁부문에 초청받았고, 감독상을 수상했다. 부산은 ‘박하사탕’ 이후 최대 개막작을 놓친 셈이 되고 말았다.

# 한국 작품 각각 4편

1996년 제1회 개막작은 ‘비밀과 거짓말’(영국·프랑스), 폐막작은 ‘무산의 비구름’(중국)이었다. 그간 선정된 작품 가운데 한국 영화가 가장 많다. ‘박하사탕’ ‘흑수선’ ‘해안선’ ‘가을로’ 등 4편이 개막작, ‘아카시아’ ‘주홍글씨’ ‘나의 결혼원정기’ ‘나는 행복합니다’ 등 4편이 폐막작으로 선정됐다. 홍콩이 3편(반생연·2046·화양연화), 중국이 3편(무산의 비구름·책상서랍 속의 동화·집결호), 중국·홍콩 합작품이 1편(크레이지 스톤), 일본은 개막작 1편(도플갱어), 폐막작 3편(간장선생·돌스·에반게리온 신극장판:서)이 초청받았다. 이밖에 영국·프랑스·미국·일본 합작품(차이니스 박스)과 이란·프랑스 합작품(고요), 그리고 인디아(레슬러) 태국(수리요타이) 대만(쓰리 타임즈) 카자흐스탄(스탈린의 선물) 작품이 1편씩 선정됐다.

한국 등 아시아 영화가 해외에서 각광받으면서 부산 주최측은 개·폐막작 선정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후보가 될 만한 작품 해당 영화인들이 3대 국제영화제 등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산영화제는 개·폐막작 중 1편은 프리미어 작품을 포기하는 차선책을 택하곤 했는데 이 과정에 ‘2046’의 경우처럼 스타성과 안정성에 의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는 “부산에 바로 앞서 베니스·토론토영화제가 개최돼 선정에 어려움이 가중됐는데 10회를 넘기면서 수월해졌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