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은 평범한 남자의 인생역정을 시간을 거슬러 추적, 개인과 사회적 폭압의 상관관계를 조명했다.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 새 천년을 맞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내다보는 울림을 줬다.
새해가 밝았다. `기다리다 미쳐'가 1일 개봉된 가운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아스라이’ ‘뜨거운 것이 좋아’ ‘어린왕자' ‘라듸오 데이즈’ 등이 1월에 선보인다. 악전고투의 나날을 보낸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한국영화가 얼마나 선전할지 주목된다.
# ‘박하사탕’, 1일 0시 개봉
달력에 1월1일은 ‘신정’으로 기록돼 있다. 이 날은 예나 지금이나 극장가의 성수기에서 제외돼 있다. 화제작이 크리스마스와 설(구정)에 몰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일에 개봉된 영화 가운데 최고 화제작은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이다. 2000년 1일 0시에 첫선을 보였다. 제작·배급사는 새 천년을 여는 개봉작이란 데 맞춰 1일 0시에 폭죽을 쏘고 강설기로 눈을 날리는 화려한 이벤트를 가졌다.
배급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국 3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99년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외 언론의 격찬을 받았지만 요즘과 달리 주인공 설경구·문소리가 신인인 데에다 이창동 감독도 데뷔작 `초록물고기'로 명성을 얻은 정도였고, 1주일 뒤 개봉되는 ‘거짓말’ 등의 영향으로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는 멀티 플렉스 시대가 열리기 전이었다. 10여개 서울 개봉관 가운데 포스트는 종로3가에 있는 피카디리였다. 개봉 이벤트는 이 극장 앞 광장에서 마련됐다. 이에 힘입어 0시 개봉에는 1300여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2회는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오전 11시경에 상영됐다.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서울에서 29만352명이 관람했다. 배급사 관계자는 “전국에서 40만여명이 관람, 손익분기점을 넘었다”면서 “관객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결성된 팬클럽(박하사탕을 사랑하는 모임) 도움도 적잖았다”고 회고했다.
‘박사모’는 이후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 ‘파이란’(송해성) 등 비록 규모는 작지만 울림이 큰 영화에는 팬클럽이 결성돼 다시 보기 운동이 인 것이다. ‘박사모’는 요즘도 활동 중이다. 서울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 5주년을 맞아 2005년 1월1일 0시에 ‘박하사탕’을 재상영하는 행사를 가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밀양’ 보러가기 운동을 펼쳤고 12월23일에는 송년 모임을 갖기도 했다.
# 1월1일에 포문 열어
2000년대 들어 1월1일에 개봉된 영화는 3편이다. 2000년 1월1일에 ‘박하사탕’ 외 ‘학교전설’(김현명)이, 2002년에 ‘너에게 나를 보낸다2’(김봉은)가 개봉됐다. 90년대에는 1999년에 ‘태양은 없다’(김성수), 1998년에 ‘죽이는 이야기’(여균동), 1991년에 ‘너에게로 또다시’(심재석)와 ‘무릎 위의 여자’(강구연)가 개봉된 바 있다.
올해에도 1일에 류승진 감독의 ‘기다리다 미쳐’가 1일에 포문을 열었다. 이 영화는 입대와 연애를 접목시킨 로맨틱 코미디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거나 ‘군화’를 바꿔 신는 위기를 넘나드는 청춘남녀 네 커플의 각기 다른 좌충우돌 연애담을 그렸다. 손태영·장근석이 연상연하 커플, 장희진·데니안이 눈물겨운 짝사랑 커플, 유인영·김산호가 캠퍼스 닭살 커플, 한예슬·우승민이 본능에 충실한 코믹 커플로 출연했다.
# 1월 영화는 아름다워
1월에 개봉된 영화 중에는 화제작이 즐비하다. 일례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 가운데 최초로 초청받은 ‘춘향뎐’(임권택)과 ‘씨받이’(임권택) 이후 12년 만에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거짓말’(장선우)이 2000년 1월에 개봉됐다. 2002년에 ‘나쁜 남자’(김기덕) ‘공공의 적’(강우석), 2004년에 ‘말죽거리 잔혹사’(유하), 2005년에 ‘말아톤’(정윤철) ‘공공의 적2’(강우석), 2007년에 ‘로보트 태권브이’(김청기) 등이 선보였다.
올해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임순례) ‘무방비도시’(이상기) ‘아스라이’(김삼력) ‘뜨거운 것이 좋아’(권칠인) ‘어린왕자’(최종현) ‘라듸오 데이즈’(하기호) 등이 선보인다. 이 가운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무방비도시’(개봉 10일) ‘뜨거운 것이 좋아’(17일) ‘라듸오 데이즈’(31일)의 흥행이 기대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아테네올림픽 명승부전으로 손꼽히는 여자 핸드볼 결승전을 다뤘다. 3연패를 노리는 덴마크에 맞서 19번의 동점과 연장에 재연장을 거쳐 승부 던지기에서 석패한 한국팀의 분전에 얽힌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엮었다. 김정은·문소리·엄태웅·김지영·조은지 등이 열연을 펼쳤다. ‘무방비도시’는 최고의 검거율을 자랑하는 형사와 소매치기 조직을 이끄는 미녀의 치명적인 대결을 그렸다. 김명민과 손예진이 주역을 맡았다. ‘뜨거운 것이 좋아’는 누구보다 뜨겁게 살고 싶은 세 여자의 속마음을 꾸밈없이 담아냈다. 이미숙·김민희·안소희가 나이·세대·스타일이 각기 다른 여성으로 열전을 펼쳤다. ‘라듸오 데이즈’는 19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경성 방송국을 배경으로 역량이 의심스러운 이들이 완벽한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펼치는 무한 도전기를 다뤘다. 류승완·이종혁·김사랑·김뢰하·황보라 등이 호흡을 맞췄다.
이밖에 ‘아스라이’는 한 소년의 불철주야 감독 거듭나기를 다룬 성장영화다. 지난해 인디포럼과 서울독립영화제를 수놓은 작품으로 김상석·심재원·강미애 등이 함께했다. ‘어린왕자’는 영상에 소리를 입히는 폴리 아티스트와 같은 병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게 즐거운 소년의 우정을 다뤘다. 탁재훈과 강수한이 주인공을 맡았다.
<배장수 선임기자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