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데이즈’의 김윤진(위). 김선아가 물러나면서 여주인공을 맡은 그 역시 유오성·장동건·전도연 등과 마찬가지로 홈런을 날릴는지 주목된다.
# 촬영 중 주인공 교체
김윤진이 요즘 찍고 있는 영화는 ‘세븐 데이즈’다. 이 영화는 원래 제목이 ‘목요일의 아이’다. 김선아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영화사와 김선아 간의 갈등으로 제작이 중단된 뒤 감독·시나리오·제목 등이 바뀌었다. 김윤진은 이같은 사실을 모르고 미국 드라마 ‘로스트’(Lost) 시즌3과 시즌4 사이에 찍을 작품으로 선택했다. 영화사와 김선아 측은 법정에서 시비를 가릴 예정이다.
어쨌든 이처럼 주인공이 촬영을 하던 중에 교체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김선아에서 김윤진으로 바뀐 경우는 두 여배우 모두 신인이 아니라 톱스타여서 특히 이례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는 ‘바람의 파이터’ 등을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원래 주인공은 가수 비(정지훈)였다. 주인공을 맡은 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비는 양윤호 감독과 일본 극진 가라데의 동계수련회에 참가한 데 이어 5일 동안 겨울 장면을 찍기도 했다.
그런 중 문제가 발생했다. 투자를 받는 게 차질을 빚으면서 제작이 꽤 지연됐고, 촬영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던 비는 예정돼 있던 음반 녹음작업에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비는 결국 출연을 포기했고, 제작사는 훗날 양동근을 캐스팅해 영화를 완성한 뒤 흥행에 성공했다.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 그는 김선아와 수애가 거절했던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 대신 출연해 부와 영예를 거머쥐었다.
# 대타로 나서 홈런 날려
‘목요일의 아이’는 김선아가 MBC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뒤에 결정한 영화다. 그는 이 영화를 하느라 ‘미녀는 괴로워’ 등의 출연을 고사했다. 김아중은 김선아·수애 등 많은 여배우들이 고사한 작품에 후속 타자로 출연해 빅히트를 기록하고 대종상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와 같은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설경구·배용준·전도연·전지현·문소리 등을 대표적인 배우로 들 수 있다.
‘박하사탕’의 김영호는 이창동 감독이 한석규를 염두에 두고 쓴 인물이었다. 이감독의 ‘초록물고기’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한석규 역시 차기작을 ‘박하사탕’으로 정해 놓고 시나리오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석규는 ‘박하사탕’ 시나리오를 보고 난 뒤에 돌변,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감독이 직접 나섰지만 요지부동. 결국 이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설경구를 뽑았고, 열연을 펼친 설경구는 국내 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싹쓸이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탤런트 배용준은 이정재가 고사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조원 역을 맡아 영화배우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탤런트 전도연 역시 김남주 등이 물리친 ‘접속’으로 스크린 신고식을 화려하게 치렀다. 전지현은 배두나가 반납한 ‘엽기적인 그녀’로, 문소리는 김혜수가 번복하는 바람에 출연한 ‘바람난 가족’을 통해 흥행배우 대열에 올라 섰다. 이밖에 고소영은 심은하가 사절한 ‘비트’로, 유오성은 차인표가 사양한 ‘친구’로, 유지태는 송승헌이 마다한 ‘동감’으로, 김상경은 이병헌이 응하지 않은 ‘살인의 추억’으로 각광받았다.
# 캐스팅은 괴로워
남녀 주인공 캐스팅은 제작진이 처음에 후보로 꼽았던 대로 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일례로 ‘은행나무침대’의 수현(한석규)은 안성기, 황장군(신현준)은 가수 신성우가 첫 후보였다. ‘주홍글씨’의 기훈(한석규)은 조재현, ‘범죄의 재구성’의 창혁(박신양)과 인경(염정아)은 차승원과 김남주가 1순위였다.
후속 타자가 쉽게 결정되는 경우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주인공 캐스팅이 완료되면 영화 제작이 절반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길 정도로 2순위 기용에도 실패, 3·4순위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접속’의 동현 역 캐스팅이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초고 때 한석규에게 주어진 이 역은 1년 6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동현 역 캐스팅에 나섰지만 웬만한 스타급 남자배우에게 모두 거절당했다. 그런 뒤 첫 후보였던 한석규가 맡아 흥행의 주역이 됐다.
이밖에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와 우식은 김재원과 고수에서 양동근과 김래원을 거쳐 권상우와 이정진이 맡았다. 은주 또한 가수 유진 등을 경유한 뒤 한가인으로 정해졌다. ‘공동경비구역JSA’의 경우 이수혁 병장은 차인표·이정재, 오경필 중사는 최민식 등을 거쳐 이병헌·송강호가 맡게 됐다.
배우들은 판단을 잘못 했거나 신경을 덜 쓴 바람에 흥행작을 놓치고는 한다. 후속 타자로 나섰다가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는 한다. 배우들은 이에 대해 “다 자기 밥그릇이 따로 있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친구’의 동수는 원래 정준호에게 주어졌다. 그는 이에 앞서 출연키로 한 ‘싸이렌’ 제작이 늦어졌을 때 출연료를 돌려주고 ‘친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싸이렌’ 제작진과의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친구’를 포기, 장동건을 추천해줬다. ‘친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싸이렌’은 참패했다. 정준호는 이에 따른 아쉬움을 주위의 반대를 무릎쓰고 출연한 ‘두사부일체’로 빅 히트를 기록하면서 달랬다.
〈배장수 선임기자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