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임권택영화예술대학

입력 : 2008.03.11 20:49 수정 : 2008.03.11 20:52

최근 부산의 동서대학교에선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출범 기념 심포지엄’이 열렸다. ‘글로벌시대 한국영화를 이끌어갈 인재 육성 방안’에 관한 주제로.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생존하는 영화인 이름을 딴 4년제 대학이 설립된 것은 이 대학이 전 세계에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권택 감독은 석좌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 3개월간 삼고초려

‘임권택영화연구소’. 1000점이 넘는 자료는 임권택 감독의 작품은 물론, 한국영화의 발자취를 확인하고 땀내나는 향기를 맛볼 수 있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은 지난해 가을에 설립됐다. 영상매스컴학부의 영화과, 공연예술학부의 뮤지컬과와 연기과를 병합해 임권택영화예술대학으로 출범했다. 첫 신입생 100명(영화과 40명, 연기과 30명, 뮤지컬과 30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이 대학 설립이 구체적으로 발의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이 대학 박건섭 학장은 “교수들 사이에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설립안이 거론된 것은 1년쯤 됐다”면서 “학교 측의 긍정적 반응에 힘을 얻어 차근차근 추진해 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부터 감독님께 말씀드렸는데 한사코 사양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며 “성함만 빌려올 요량이라면 설립할 이유가 없고 학교에서 만전을 기할 거라는 점을 거듭 약속해 7월에야 허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임감독은 “개인으로선 더없는 영광이지만 이름뿐인 대학에 그칠 경우 학교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되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고 털어놨다.

임감독은 사실 동서대학교와 인연이 깊다. 동서대학교가 부산국제영화제와 공동으로 2005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는 아시아의 예비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아시아필름아카데미(Asia Film Academy)의 2기 교장을 맡았다. 당시 동서대학교가 갖춘 풍부한 기자재에 호감을 가졌다.

임감독은 이외에 몇 가지 점을 감안, 대학 설립을 수용했다. 동서대학교(총장 박동순)가 국내 최초로 2000년에 뮤지컬과를 만든 점, AFA의 아시아 학생 가운데 매년 1명을 선발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고 있는 점, 프랑스에서 수학한 뒤 영화사 신씨네 등에서 20년간 활동한 박건섭 학장 등의 열정이다. 박학장은 “재능 있는 영화·연기·뮤지컬 지망생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실습·현장 중심의 커리큘럼을 강화해 임권택영화예술대학을 명문으로 육성하겠다”고 역설했다.

임감독은 이번 학기에 단편영화 제작실습을 맡는다. 임감독은 재학생들에게 각각 단편소설 3편씩을 추천받은 다음 이 가운데 1편을 선정한다. 재학생들은 4~5개 조로 나뉘어 조별로 선정된 소설을 각색하고, 역할을 분담한 뒤 연기·뮤지컬과 재학생들을 배우로 영입해 영화를 만든다. 학기말에는 자체 시사회도 갖는다. 임감독은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같은 원작이라도 각색·제작과정을 통해 색깔이 다른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는 시행착오를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100편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창의성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간의 경험을 살려 학생들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성혼선언문도 비치

동서대학교 내에는 ‘임권택영화연구소’가 있다. 10층 건물 7층에 자리한 120평 규모의 임권택영화 연구소이자 박물관이다. 임권택영화예술대학 설립과 더불어 준비, 지난해 10월에 문을 열었다.

이 연구소는 여섯 구역으로 나뉘어 임감독이 그간 국내외에서 받은 상장·트로피·훈장, 임감독이 연출한 100편의 영화 시나리오·포스터, 100번째 영화 ‘천년학’ 기획·제작·마케팅 과정 사진·물품, 100편의 영화 장면사진과 기타 영상자료가 빼곡히,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그리고 시사실과 연구실을 갖췄다. 시사실은 30여명이 자리할 수 있다. 연구실에는 임감독 영화 비디오·DVD, 손떼 묻은 콘티, 임감독에 관한 책·논문 등이 갖춰져 있다.

이 가운데 임감독이 데뷔작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로 수상한 신인감독상 트로피가 우선 눈길을 끌었다. 임감독은 다작 감독으로, 수십편을 만들 때까지 그렇고 그런 작품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데뷔작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전도유망한 감독이었던 것이다.

임감독과 채령 여사의 ‘혼인서약서’와 ‘성혼선언문’도 눈에 띄었다. 박학장이 들려준 개관 당시 에피소드가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채여사께서 자료를 보내다가 끼어들어간 것 같다고 쑥스러워하자 농담을 즐기는 감독님이 우리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빼도 된다고 말씀해 좌중에 폭소가 만발했다”는 것이다.

박학장 등은 개관을 준비하면서 3개월 넘게 자료를 수집했다. 1000점이 넘는 방대한 자료는 대부분 오리지널이다. 박학장은 “감독님이 자료를 많이 갖고 계실 줄 알았는데 없다고 말씀하실 때 눈앞이 캄캄했다”면서 “채여사께서 꽤 보관해두셔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회상했다. “감독님이 받은 국내외 영화제 ID와 배지, 그간 사용한 신발·의상·모자·의자까지 챙기는 과정에 혼인서약서와 성혼선언문도 가져오게 됐다”며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자료원, 감독님과 오랫동안 함께 작업하셨던 배우·스태프분들의 협조 덕분에 방대한 자료를 전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감독님의 발자취를 모아두었다기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살필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임감독의 고향인 호남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인 임감독의 연구소·박물관이 부산에 마련될 때까지 손을 놓고 있은 데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