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군(軍)
다음주에 개봉되는 ‘화려한 휴가’(감독 김지훈·제작 기획시대)에는 많은 총기가 나온다. 이 총기들 가운데 M16 10정과 LMG 1정, 권총 2정 등은 홍콩에서 임차해 사용한 것이다. 제작진은 총기 임차와 함께 공포탄 2만발을 수입해 사용하는 데 대행업체 수수료를 포함해 8000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군의 지원을 받았더라면 해외로 나가지 않았을 돈이다.
기획시대 측은 제작에 앞서 군의 지원을 모색했다. 군의 유혈진압으로 쓰러져간 민초들의 분노와 한을 담은 영화의 내용, 사실 여부를 떠나 군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가 담긴 영화는 외면하는 군의 특성상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이수남 PD는 “서울영상위원회를 통해 군의 지원이 가능한지를 알아봤는데 예상했던 대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대행사를 통해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홍콩업체에서 총기와 공포탄을 갖다 썼다”고 밝혔다. “군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면 리얼리티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군인이 주인공이거나 전투 장면이 나오는 영화는 군의 지원이 절실하다. 경제적 측면은 물론 시대 배경에 따른 군복·계급장·휘장의 유형과 상황·전황에 대한 고증 등이 영화의 사실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영화 가운데 군의 협조와 지원을 받은 영화는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한 휴가’ ‘한반도’ ‘웰컴 투 동막골’ ‘R포인트’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블루’ ‘해안선’ ‘공동경비구역JSA’ ‘쉬리’ ‘하얀전쟁’ ‘남부군’ 등 그간 선보인 영화 가운데 ‘한반도’ ‘블루’ 등에 불과하다. 영화계와 군 간에 협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고, 내용에 대해 군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바꿔” “괜찮아”
군은 영화제작을 지원하기에 앞서 내용을 중시한다. 이 과정에 ‘태극기 휘날리며’와 ‘블루’에 대해 군이 보인 태도는 대조적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육군으로부터 외면받은 데 비해 ‘블루’는 해군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육군은 지원에 앞서 ‘태극기 휘날리며’의 30여 장면을 문제 삼았다.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의 징집을 자원 입대로 바꾸는 걸 비롯해 진태가 신임 대대장(김해곤)을 사살한 뒤 인민군이 되고, 진석이 인민군 포로들과 싸우고, 국군이 포로를 사살하고, 국군과 반공청년단이 보리쌀을 타기 위해 ‘보도연맹’에 가입한 영신(이은주) 등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사살하는 장면 등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라는 것이다.
양측의 협의는 약 7개월간 이어졌다. 제작진에 따르면 육군은 지원 건을 놓고 6명의 장군이 회동했다. 창군 이래 영화제작 지원 건을 놓고 ‘별’들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는 이 자리에서 1명의 강경파가 5명의 온건파를 누르면서 지원을 거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방부와의 협의가 무위로 그친 뒤 강제규필름은 탱크 장갑차 등은 물론 M1소총 등 개인화기까지 모두 만들어야 했다.
‘블루’에도 하극상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김대위(신현준)가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폭행까지 한다. 김대위와 약 100명의 장교·사병은 강소령(신은경)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일환으로 훈련을 마친 뒤 해산할 때 모두 발가벗고 그를 거쳐 뛰어간다. 하지만 해군은 특정 장면보다 영화 전체를 보고 작전사령부를 비롯해 구축함과 헬기, 전세계에 3대밖에 없다는 해저잠수정 DSRV까지 제공하면서 기술지도는 물론 연인원 5000명의 병력도 지원했다. 여자 장교를 향해 발가벗고 뛰어가는 장면에선 불평의 소지가 없도록 지원자를 뽑았다.
#“어디에 쓰는 총인가?”
‘쉬리’ ‘로스트메모리스 2009’ 등은 총기와 총알을 미국에서 구입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미국과 홍콩의 가격을 비교, 총은 홍콩에서 들여왔고 총알은 격발 시 연기가 많이 나는 게 필요해 미국에서 샀다. 이처럼 국내 영화사에서 영화제작에 필요한 총기와 총알은 미국과 홍콩에서 들여온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들여오는 게 까다로워 요즘은 주로 홍콩에서 들여온다. 가져온 총기와 총알은 관련 법에 따라 관할 경찰서에 맡긴 뒤에 사용한다. 아침에 가져다 쓰고 촬영을 마친 뒤 반납한다. 하루 단위로.
‘베를린리포트’ 때 일이다. 이 영화의 연출부였던 이현승 감독은 프랑스 로케이션 때 그곳 대여업체에 권총을 빌리려 갔다가 무안스러운 경험을 했다. 어느 시대, 어떤 신분의, 누가 사용하는 것인지 등에 대한 설명 없이 그냥 권총을 빌리러 왔다고 했던 것이다. 그곳에는 총기 등 모든 소품이 구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구분·보관돼 있었다.
미국은 국방부 산하에 ‘영화산업진흥단’을 두고 영화제작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우리 국방부도 2002년 11월 ‘미간영화 제작지원’ 지침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조건이 까다로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총리실은 2005년 3월에 국방부·해양수산부·경찰청·도로공사 등을 참여시킨 ‘문화예술산업 지원협의회’를 국무조정실에 설치하겠다고, 정부는 같은 해 7월에 국내 업체가 영화용 모의 총포류를 제작하고 임대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