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대문 출신 용팔이’ 포스터.
아… 남대문!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전소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국보 1호인 만큼 숭례문을 무대로 한 영화가 있지 않을까? 충무로 원로들에게 남대문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남대문으로 바꿔”
한국영화는 ‘의리적 구토’(1919) 이후 지난해까지 장편의 경우 5800여편이 제작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원로 영화인들과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www.kmdb.or.kr)에 따르면 5800여편 가운데 남대문을 소재로 한 작품은 한 편도 없다. 제목에 남대문이 들어간 영화도 설태호 감독의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가 유일하다.
이 영화는 6·25 때 헤어진 여동생을 찾아나선 의리의 사나이 용팔(박노식)의 활약상을 그렸다. 설태호 감독은 “기획 당시 제목은 ‘지하도의 용팔이’ 등이었는데 주인공이 여동생을 잃어버린 곳과 훗날 찾은 곳이 남대문이라는 데 착안해 제목을 바꿨다”고 밝혔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용팔이’ 시리즈가 잇따라 제작됐다”고 덧붙였다.
참고로 ‘용팔이’ 시리즈는 모두 10편(기준 kmdb)이 선보였다. 설감독의 ‘남대문 출신 용팔이’와 ‘역전 출신 용팔이’(1970) ‘운전수 용팔이’ ‘신입사원 용팔이’ ‘위기일발 용팔이’(이상 1971) ‘엘에이(LA) 용팔이’(1986) 등과 강대선 감독의 ‘용구와 용팔이’(1973), 박노식 감독의 ‘방범대원 용팔이’(1976)와 ‘돌아온 용팔이’(1983), 김시현 감독의 ‘소림사 용팔이’(1982) 등이다.
# 서울, 상경(上京) 상징
영화 ‘쏜다’ 제작진이 서울영상위원회 등의 협조를 받아 남대문 인근에서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의 키워드·줄거리 부문에서 남대문을 검색하면 고작 3편이 나온다. 이두용 감독의 ‘해결사’(1981), 김수용 감독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1984),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LEE’(2000) 등이다.
남대문은 ‘해결사’에서 주인공의 활동무대를 보여줄 때, ‘저 하늘에도 슬픔이’에서는 담임 선생이 제자 윤복을 찾아 상경(上京)했을 때 보여진다. ‘다찌마와 LEE’에선 주인공이 ‘남대문 용팔이’ 등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전설 속의 인물이라는 거로 설명돼 있다.
이두용 감독은 “우리나라 건축문화재는 특유의 양식을 지녔다”며 “남대문의 경우 건물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도 찍는 각도에 따라 운치가 달라 ‘청송으로 가는 길’(1990) 등 몇 편에 담았다”고 소개했다. 국내 감독 가운데 최다 연출(109편)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김수용 감독은 “한 영화에서 상경한 복해숙씨가 남대문에서 생전 처음으로 택시를 탈 때 신발을 벗고 타는 걸로 찍었는데 상영 당시 관객들 사이에 폭소가 터졌다”고 회상했다.
남대문은 이처럼 1960년대 전후 영화상에서 서울과 상경을 상징했다.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영화정보센터 대표·중구문화원 자문위원)는 “서울역에서 나온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남대문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았다”면서 “남대문에서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과 청와대 쪽으로 나있던 양 갈래 길, 국내 최초의 남대문 지하도 등도 극중 배경이 서울임을 보여주는 주요 촬영지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영화는 ‘서울의 휴일’(1956) ‘염통에 털난 사나이’(1970) ‘만다라’(1981) ‘천국의 계단’(1991) 등 부지기수다. 임권택 감독은 “당시 시골 사람들에게 남대문이 갖는 상징성은 요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며 “법운(안성기)이 생모(박정자)에게 전화를 걸 때 굳이 뒤로 남대문이 보이도록 찍은 게 그런 이유”라고 밝혔다. 배창호 감독은 ‘꼬방동네 사람들’(1982)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천국의 계단’ 등 3편에 각기 다른 남대문 장면을 넣었다. 배감독은 “남대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남녀 주인공의 현위치와 상황을 관객들에게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 “남대문을 빼라”
임권택 감독이 밝혔듯 남대문이 갖는 상징성은 예전만 못하다. 서울영상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최근 3년 동안 남대문 일대에서 서울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아 촬영을 진행한 작품은 2편에 불과했다. 대조적인 두 남자가 벌이는 하루 동안의 일탈을 그린 박정우 감독의 ‘쏜다’(2007)와 미국 MTV의 ‘메이드’(Made)이다.
‘쏜다’에서 남대문은 만수(감우성)가 부도덕한 국회의원(장항선)의 아들 태웅(김혁)과 도심에서 벌이는 카레이싱 장면에 나온다. 이 장면 배경은 서울이지만 촬영 편의상 주로 부산에서 찍었다. 부산에서 약 30일 동안 찍은 장면에 동작대교·반포대교·남산터널·남대문 등에서 4일 동안 찍은 장면을 정교하게 편집, 서울 거리로 둔갑시켰다.
‘메이드’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외국인이 남대문 등 서울의 주요 명소를 찾아다니면서 한국의 음식·문화 등을 체험하는 과정을 담았다. 제작진이 내한, 지난해 12월17~25일에 찍었다.
서울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의 김미혜 팀장은 “지난해 4월부터 외국을 상대로 로케이션 유치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그간 배포한 홍보물을 보고 문의해온 곳에 ‘국보 1호’라고 소개한 남대문이 불에 타 없어졌다는 설명을 해야 하는 게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토로했다. “홍보물을 다시 제작할 때에는 남대문을 빼고 작업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는데 한치의 허술함도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