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 연주곡’ 쓰려하자 “1억 달라”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 이준익 감독이 ‘왕의 남자’ 이후에 내놓은 영화다. 세 작품은 음악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와 음악 뒷이야기.
# 흑백 사진 한 장이 계기
이동중 무대복을 잃어버린 써니(수애)는 급조한 핫팬츠 차림의 군복을 입고 ‘울릉도 트위스트’등을 열창, 폭발적 인기를 끈다. 수애와 정진영·주진모·신현탁·정경호 등은 촬영 2개월 전부터 위문공연 장면을 연습하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님은 먼곳에’는 전쟁 휴먼 드라마. 전쟁이라는 남성적 소재를 여성의 이야기로, 베트남전을 탈 할리우드 관점으로 풀어냈다.
이 영화는 흑백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 이어 한국역사 새롭게 보기 세 번째 작품으로 이준익 감독이 선택한 소재는 베트남전. 인터넷에서 베트남전 사진을 검색하던 이감독은 한 장의 흑백사진에 꽂혔다. 뒷모습이어서 누군지 알 수 없는 한 여자 가수가 수많은 장병들 앞에서 매혹적인 모습으로 노래하는 사진이었다. 이감독은 일촉즉발의 전쟁터와 어울리지 않는 환희와 열기가 가득 찬 모습에 매료, 시골 아낙 순이(수애)가 위문공연단의 가수로 변신해 참전한 남편(엄태웅)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엮어냈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등에서 호흡을 맞춘 최석환 작가와 함께.
영화에 나오는 노래는 1970년대를 풍미한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과 김정미의 ‘간다고 하지마오’, 이시스터즈의 ‘울릉도 트위스트’,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 CCR의 ‘수지Q’ 등이다. 이감독과 최작가가 시나리오 작업 당시 선곡했고, 실무작업은 방준석·이병훈 음악감독이 진행했다.
작업 당시 가장 애를 먹은 노래는 ‘대니 보이’. 아일랜드 독립전쟁 당시 죽은 남편·자식·친구를 그리는 슬픈 가사와 선율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이감독은 에릭 클랩튼이 기타로 연주한 곡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대행사에서 요구한 저작권료가 무려 1억원이나 됐다. 이감독은 고심 끝에 포기, 방·이 음악감독의 연주곡으로 대체했다. 작자 미상인 민요여서 저작권료는 한 푼도 들지 않았다. 반면 ‘수지Q’를 사용하는 데에는 5000만원이 소요됐다. 한국 노래는 모두 4000만원 정도를 지불했다.
참고로 팝송은 사용권을 획득하는 게 관건이다. 저작권료는 차후 문제다. ‘말죽거리 잔혹사’ 제작진은 그룹 캔사스의 ‘더스트 인 더 윈드’(Dust in the wind)를 쓰기 위해 처음 제안했던 금액의 2.5배를 제시하면서 꼭 쓰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체곡으로 모리스 앨버트의 필링스(Feelings)를 확정하기까지 4개월여를 기다려야 했다.
기존 음악을 활용할 때 중요한 점은 사용범위. 영화 외 비디오·DVD 등에도 사용하는지, 수출 여부와 그 범위, O.S.T 음반으로도 내는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국내용으로만 계약한 뒤 수출할 경우 음악을 바꾸는 건 이 때문이다.
# 2개월여 8시간 이상 연습
‘님은 먼 곳에’에서 밴드의 위문공연 장면은 전통적인 플레이백(Play Back) 방식으로 완성했다. 배우들이 두 달이 넘게 연습한 뒤 녹음한 곡대로 연주하는 장면을 찍고, 후반작업 때 방준석·이병훈 감독 팀이 이 장면을 틀어놓고 이에 맞춰 연주한 곡을 사용했다.
‘즐거운 인생’도 마찬가지. 이 영화는 뒤늦게 꿈을 이루는, 즐거운 삶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코미디. 극중 록밴드 활화산의 멤버인 정진영·김윤석·김상호·장근석은 배역 소화를 위해 지옥훈련을 감내해야 했다. 한 달이 넘도록 2평 남짓한 연습실에서 매일 8시간 이상 연주와 노래에 매달렸다. 그러느라 기타줄을 100개 이상 끊어먹고, 30개가 넘는 스틱을 부러뜨렸다. 촬영에 들어간 뒤 2개월여 내내 안산의 한 대학교 게스트하우스에서 동고동락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극중에 나오는 노래는 ‘터질거야’와 ‘즐거운 인생’, 그리고 기존 히트곡 ‘한 동안 뜸했었지’ ‘불놀이야’ 등 6곡이다. 이감독은 이 곡 연주장면 촬영 당시 멀티 녹음방식을 도입했다. 악기마다 마이크를 설치한 뒤 음악전문 녹음팀을 투입, 배우들의 공연실황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병훈·방준석 감독은 후반작업 때 플레이백 방식으로 배우들의 연주 소리를 보강, 사실감을 극대화시켰다. 이·방 감독은 활화산에게 공연할 기회를 주는 홍대 클럽 사장으로 출연도 했다.
‘라디오 스타’의 음악은 방준석 감독이 맡았다. 1990년대 초반 재즈밴드 ‘유&미 블루’에서 활동한 뒤 ‘공동경비구역JSA’ ‘후아유’ ‘오! 브라더스’ ‘너는 내 운명’ ‘짝패’ 등의 음악을 맡은 방감독은 ‘라디오 스타’ 스태프 가운데 가장 먼저 참여, 최곤(박중훈)의 80년대 히트곡 ‘비와 당신’을 만들어냈다.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노래는 10여곡. ‘비와 당신’ ‘크게 라디오를 켜고’ ‘미인’ ‘아름다운 강산’ ‘빗속의 여인’ ‘돌고 돌고 돌고’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넌 내게 반했어’ 등으로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더해줬다. 영화음악으로 조용필의 노래가 사용된 것은 ‘라디오 스타’가 처음이다. 조용필은 이 영화 주인공인 안성기와 경동중학교 동기동창. 3학년 때 한반이었고 절친했다. ‘그대 발길~’ 사용은 이같은 점과 시나리오 덕분에 가능했다. ‘넌 내게 반했어’의 노브레인은 이 영화를 통해 폭발적인 주목을 끌었다. 극중 유일한 팝송인 ‘비디오 킬드~’ 저작권료로는 2000만원을 지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