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출연·제작진은 영화 장르를 ‘투혼극’으로 명명했다. 금메달보다 빛나는 은메달을 일궈낸 아줌마 선수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정한 투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19번의 동점, 연장에 재연장, 그리고 승부던지기. 다음달 10일 개봉되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 결승전에서 덴마크와 128분 동안 접전을 벌인 한국팀의 투혼을 담았다. 출연·제작진 역시 투혼을 발휘, 명승부전을 재현해 냈다.
#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기념비적인 영화다. 세계 최초의 핸드볼 소재 영화다. AP통신이 선정한 ‘아테네올림픽 10대 명승부’ 가운데 하나를 영상화, 국내외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는 2005년 1월,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가 기획했다. 결승전 실황과 이후 방송된 KBS ‘인간극장’(히로시마의 두 여자)이 기획 동기가 됐다. 시나리오는 나현씨가 썼다. 나현씨의 전작으로는 ‘목포는 항구다’ ‘돌려차기’ ‘화려한 휴가’ 등이 있다. 임순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담고 싶어하는 주제와 시나리오에 공통점이 많다는 점을 감안, 애초의 생각을 바꿔 연출을 맡기로 결정했다.
임감독이 먼저 한 것은 자료수집. 핸드볼 영화가 부재, 임감독은 농구영화를 중심으로 국내외 스포츠영화를 감상했다. 핸드볼 경기 영상을 보고 경기도 관람했다. 최근 10년간 나온 핸드볼 관련 기사를 숙지했다. 대한핸드볼협회와 태릉선수촌을 방문, 조언을 구했다. 아테네올림픽의 주역인 선수들과 아테네에 이어 2008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팀 사령탑을 맡은 임영철 감독 등을 인터뷰했다.
임감독은 수집한 자료를 분석한 뒤 2006년 11월,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인 이대진 코치를 슈퍼바이저로 영입했다. 이코치의 도움을 받아 배우들의 플레이 동선을 짰다. 이를 바탕으로 3D 콘티를 완성했다. 실제 촬영 시 오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감독과 제작진은 또 아테네올림픽 핸드볼 결승전이 열린 그리스 아테네의 헬레니코 경기장을 방문했다. 이후 전국의 체육관을 순례, 인천의 심산체육관을 헬레니코 경기장으로 재현해 냈다. 이와 같은 작업에 약 2년 반이 걸렸다.
# 배우를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로
스포츠 영화의 성패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장면에 좌우된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제작진은 이를 위해 운동선수 출신을 대상으로 공개 오디션을 했다. 100여명의 응모자 가운데 핸드볼 선수 출신인 조미선·이수정·종선애씨 등 7명을 선발, 후보선수로 기용했다. 이수정·종선애씨는 출연과 더불어 배우 선수들의 트레이너 역할도 겸했다.
이대진 코치는 지난 3월부터 주전 7명(문소리·김정은·김지영·조은지·민지·남궁은숙·이미도)을 대상으로 3개월여 동안 훈련을 실시했다. 주 4회, 하루에 7~8시간씩 기본기를 다지는 체력훈련과 드리볼·패스·슈팅과 고난도의 세트 플레이, 페인트 모션 등의 실전훈련을 시켰다. 이 과정에 배우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각자 포지션에 따라 개인 교습도 받았다. 주전 공격수 미숙 역을 맡은 문소리와 감독 역을 맡은 엄태웅은 실제 선수·감독의 걸음걸이·말투·표정 등을 관찰해 연기에 응용했다.
배우들은 처음에는 구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점차 적응, 추가 웨이트트레이닝을 스스로 했다. 닭가슴살 등 고단백 식단으로 몸 만들기에도 나서 5㎏ 정도를 늘렸다. 골키퍼 역할을 맡은 조은지는 “공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면서 “연습·촬영기간 동안 팔·다리에 멍이 가실 날이 없어 치마를 입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문소리는 “촬영을 앞두고 10일 동안 한 방에서 합숙했다”며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같이 ‘아~~’ 하는 신음을 냈는데 가슴에 멍이 들기도 한 은지의 소리가 가장 컸다”고 덧붙였다.
# 128분간의 결승전 실황 재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하이라이트는 결승전 실황. 제작진은 이를 위해 덴마크의 오르후스팀을 섭외했다. 결승전 당시 승부던지기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골키퍼 등이 소속된 세계적인 팀이다.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던 최임정·허순영 선수가 진출해 있는 팀이기도 하다.
운이 따랐다. 이 팀이 국제실업경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6월 한국을 찾은 것이다. 오르후스팀 측은 영화의 취지와 한국 핸드볼의 발전을 위해 제작진의 요청에 화답, 7월 초부터 열흘 동안 촬영에 응했다. 결승전 촬영에는 5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
김정은은 리허설을 마친 뒤 실제 촬영 때 골반을 다쳐 진통제를 맞고 촬영에 임했다. 그는 “6시간 정도 지난 뒤 약기운이 떨어지면 두 배로 아파서 울면서 잠들곤 했다”고 토로했다. “촬영 짬짬이 쉴 때 누구 하나 의자에 앉아서 쉬지 않고 코트 위, 촬영하던 그 자리에 누워서 쉬었다”면서 “하지만 아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 촬영에는 최승돈 아나운서와 강재원 감독도 참여했다. 아테네올림픽 당시 중계방송과 해설을 맡은 주인공을 기용, 사실성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강감독은 현재 중국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다.
제작진은 이어 열흘 동안 그리스 현지 촬영도 했다. 미숙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덴마크와의 결승전 출전을 포기하고 공항으로 갔다가 되돌아 오는 장면 등을 찍었다. 루비비투스 언덕, 팔레론 종합경기장 등 그리스 곳곳의 전경을 담았다. 촬영을 마친 뒤 문소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