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네 삶의 화두는 소와 쇠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 ‘소를 탐하다가 대통령 자리를 잃을 수 있다’로 풀이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영화 속 소(쇠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 쇠고기 때문에 망해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공공의 적 1-1’에서 꼴통 형사 강철중(설경구)이 시킨 쇠고기의 정량 여부를 재고 있다.
강우석 감독의 ‘강철중: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과 전윤수 감독의 ‘식객’은 공통점을 지녔다. ‘강철중’은 쇠고기 유통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이 서두를, ‘식객’은 두 요리사의 쇠고기탕 맛대결이 대미를 장식한다. ‘강철중’의 이원술(정재영)과 ‘식객’의 봉주(임원희)는 쇠고기 때문에 망한 인물이다.
이원술은 ‘강철중’에서 조폭 두목이자 유통·건설사 등을 자회사로 둔 거성그룹 회장, 봉주는 ‘식객’에서 야심 넘치는 최고의 요리사다. 이원술은 수하를 시켜 쇠고기 유통업자를 죽인 뒤 강철중(설경구)에 의해 쇠고랑을 차고, 운암정의 후계자로 떠오른 봉주는 쇠고기탕을 놓고 벌인 성찬(김강우)과의 최종 대결에서 고배를 든다.
‘강철중’에서 살인사건은 도축장 내 쇠고기 저장고에서 발생한다. 제작진은 도축장을 운영하는 회사의 협조를 받는 게 힘들었다. 음식 재료를 보관하는 곳이어서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전담 스태프를 두고 전국 10여 곳의 회사를 상대로 한 달여 동안 섭외한 끝에 가까스로 허락을 받았다. 인천의 한 회사에서 내건 갖가지 조건을 수용, 최소의 인원과 장비를 투입해 대여섯 시간 동안 찍었다.
‘강철중’에는 요즘 화두인 ‘쇠고기 파동’도 거론된다. 강철중이 수사의 일환으로 거성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찾아가 쇠고기를 먹던 중 “수입산은 한우보다 맛이 없다” “원산지 표시는 사기다” “쇠고기 잘못 먹으면 광우병 걸린다” 등의 말을 앞뒤 가리지 않고 내뱉는 것이다. 강우석 감독이 지난 2월 촬영 중 즉석에서 만든 이 대사는 요즘 정국과 맞아떨어져 화제를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쇠고기탕 맞대결에 앞서 성찬과 봉주는 소를 부위별로 정형하는 시합을 갖는다. 봉주는 이 대결에서 패한다. 트럭에서 소를 강제로 끌어내리는 등 운송과정에 소가 스트레스를 받은 바람에 근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소는 예민한 동물로 스트레스를 곧잘 받고 이 과정에 근출혈이 발생하고는 한다.
# 멀고 먼 소 캐스팅
‘강철중’에는 ‘공공의 적’에서 맹활약을 펼친 용만(유해진)과 산수(이문식) 등이 특별 출연한다. 전편에서의 개성이 살아 있는 캐릭터로 등장, 영화의 재미를 더해준다. ‘공공의 적’에서 살인사건의 결정적 단서인 손톱을 찾아낸 용만은 ‘강철중’에 정육점 사장으로 출연, 이번에도 강철중이 사건을 푸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한다. 산수는 잘 나가는 노래방 사장으로 등장, 강철중에게 쇠고기를 대접하는 등 일익을 해낸다.
‘식객’에서 소와 쇠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강철중’보다 훨씬 높다. 이에 따른 에피소드가 적지 않다. 제작진은 우선 성찬과 남다른 관계인 송아지와 소를 캐스팅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극중에 나오듯 공주·청양·홍성 등 전국의 우시장을 이 잡듯 뒤져야 했다.
‘집으로…’(감독 이정향)에서의 소도 어렵게 찾아냈다. 뿔이 멋있게 난 소를 뽑기 위해 한 달이 넘도록 전국의 우시장과 축산농가를 뒤졌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감독이 한번 퇴짜를 놓은 소를 훗날 슬쩍 다시 추천한 끝에 낙점을 받았다.
제작진은 또 화가 몹시 난 소가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게 된 상우(유승호)를 매섭게 쫓는 장면 촬영에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다. 소가 상우를 뒤쫓도록 카메라 바깥에서 하루 종일 소몰이를 해야 했다.
#어미 소도 데려와
‘식객’에서 성찬이 홍수를 피해 올라간 지붕 위에서 송아지를 부여안고 흐느끼는 장면을 찍을 때에는 송아지의 어미 소도 데려왔다. 아역배우 촬영에 엄마가 동행하듯 어미의 존재를 알려 송아지를 안심시킨 가운데 원하는 장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성찬이 애지중지 키운 황소가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장면 촬영에는 소가 좋아하는 마른 깻잎을 사용해 냄새를 풍기게 했다. 소가 도살장을 향해 가다가 뒤돌아보는 장면은 수십 차례 촬영한 끝에 얻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 그간 그 소에게 온갖 정성을 쏟은 김강우는 소가 돌아보게 하기 위해 카메라 바깥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안약 대신 물을 사용해 찍었다. ‘식객’의 전감독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가운데 실제로 소리 내어 우는 것을 봤다”고 전했다.
김효천 감독의 ‘소장수’(1972), 최하원 감독의 ‘소’(1975), 이지상 감독의 ‘십우도’(十牛圖) 시리즈(2004~2007), 이충열 감독의 ‘워낭소리’(2008)….
소를 비중 있게 다룬 한국영화다. 이 가운데 ‘십우도’ 시리즈와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다. ‘십우도’ 시리즈는 2003년 귀농을 한 이지상 감독의 작품으로 ‘십우도1. 심우-소를 찾아서’(2004), ‘십우도2. 견적-소의 자취를 보다’(2005), ‘십우도3. 견우-누이를 찾아서’, ‘십우도4. 득우-두 모과’(2007) 등이 나왔다. ‘워낭소리’는 9남매를 출가시킨 노부부와 이들이 키워온 40살 먹은 소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년 동안 경북 봉화마을에서 소의 말년을 촬영, 최근 편집을 끝냈으며 오는 부산국제영화제 때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