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국제영화제 의전 해프닝, 진실 혹은 거짓

입력 : 2008.10.09 20:42

작년 PIFF 푸대접에 일정취소 서둘러 귀국?

모리코네 홀대는 낭설

VIP 극진한 대접…핸드프린팅도 미리 진행

깜짝 등장한 대선주자가 화근 일정 뒤죽박죽

“조직위원장 소개 안했다” 집행위원장 교체되기도

“비를 맞게 놔뒀다” “소개를 안 했다” “이름도 몰랐다”…. 국내 국제영화제에서 불거졌던 잡음이다. 불씨는 개막식 의전(儀典)이었다. 국제영화제 의전 해프닝 진실 혹은 소문.

# 화가 나서 가버렸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PIFF)는 ‘엔리오 모리코네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모리코네가 개막식 때 소외받은 데 화가 나 다음날 일정을 취소하고 출국해 버린 걸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사실 모리코네를 최고의 VIP로 모셨다. 개막식 때 조직위원장(부산시장) 바로 전에 입장, 대미를 장식하는 것과 다름 없도록 했다. 서울대 불문학과 출신으로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수원 프로그래머를 대동시켜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데에다 유명 배우들과 대선주자들이 대거 참석, 입장시간이 늘어났다. 모리코네는 입장을 기다려야 했고, 이때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관객과 언론의 관심이 온통 스타·대선주자에게 쏠린 것이다.

모리코네로서는 ‘내가 영화제에 온 건지, 왜 왔지?’라는 생각이 들 만했다. 이런 가운데 모리코네가 다음날 부산을 떠나자 ‘푸대접에 화가 나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간 것’으로 보도됐다. ‘모리코네가 비를 맞으면서 입장했다’ ‘입장 전 대기실에서 빨리 들어가라고 떼밀렸다’ 등등의 말들과 함께.

모리코네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우산을 받쳐든 이수원 프로그래머와 모리코네를 밀친 게 아니라 ‘잘 하고 오세요’라며 등을 토닥인, 모리코네의 서울 콘서트 때부터 통역을 맡은 긴머리 여인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대선주자들의 참석 자체를 봉쇄할 수도 없고, 이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막을 수도 없고, 모리코네의 컨디션과 다음날 떠나기로 돼 있는 일정을 고려해 핸드프린팅도 미리 진행한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에 앞서 수행원들과 함께 입장하는 이명박 후보와 엔리오 모리코네(위).

# 대선주자들이 화근

대선주자 등 정치인의 행보는 영화제 관계자를 궁지로 몰아넣기 일쑤였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5년 단위로 대선주자들의 행보로 인해 남다른 어려움을 치렀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일이다. 대선주자들이 잇달아 참석, 영화계의 표밭을 일구는 데 나섰다. 김대중 후보가 개막식에 참석한 데 이어 이회창 후보가 이틀 뒤 남포동 PIFF광장에 나타났다.

그러나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영화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각 후보 측이 요구한 의전을 모두 거절했다. “단상에 오른다고 해도 박수갈채가 터지는 게 아니고 혹여 박수가 나오지 않으면 후보에게 ‘누’가 될 수 있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영화인·관객 잔치마당”이라고 반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김후보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고, 이후보 역시 간이무대 단상에 오르지 못한 채 행사장을 떠났다.

2002년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에는 2회 때를 감안한 듯 대선주자들이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조직위원장이 같은 당 후보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바람에 원성을 샀다. 지난해 각 대선주자 수행원들 사이에선 입장순서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졌고, 주최측은 이 때문에 계획과 달리 모리코네를 먼저 입장시켜야 했다. 또 권영길 후보는 조용히 입장했는데 정동영·이명박 후보가 수행원을 대동, 잇따라 관객과 언론을 향해 유세 행위를 경쟁적으로 취해 영화제 측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 위원장 바꿔

국내 유명 국제영화제는 정부·지자체의 지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정치인의 참석을 부각하는 영화제가 없지 않다. 올해 한 국제영화제는 대통령의 축하영상에 이어 개막식에 참석한 시장 등 정치인들을 단상에 올려 축사를 하게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등이 입장 리듬에 맞춰 조용히 참석한 것과 대조를 이뤘다.

그런가 하면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조직위원장의 이름을 깜빡했다고, 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체되기도 했다. 각 조직위 측은 이를 전면 부인했지만 영화인들은 교체 사유 중 하나로 괘씸죄를 꼽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창립 멤버들이 여전히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같은 경우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유일하다. 정부·지자체 등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은 게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인정받는 데 밑거름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 등의 개막식은 30분 이내에 끝난다. 조직위원장은 개막선언 외 연설 등을 하지 않는 게 전통이다. 대통령·문화관광부 장관 등의 축하 동영상이나 연설도 곁들이지 않는다.

이같은 전통은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 일체의 요식행위를 거부하면서 다른 영화제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