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취급 ‘비상’ 다큐 최고 흥행몰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전이 오는 9월 시작된다. 이란·사우디·UAE·북한과 B조에 속한 한국이 모래폭풍을 뚫을지 주목된다. ‘비상’(飛上) ‘보리울의 여름’ ‘교도소 월드컵’ ‘골목대장’ ‘맨발의 영광’ 등 국내 축구영화 뒷이야기를 살펴본다.
# “인천 찍어, 거기 골 때려”
‘비상’
‘스포츠영화는 안 돼.’ 국내 영화계에 팽배해 있는 속설이다. 임유철 감독의 ‘비상’(2006)은 이같은 편견을 깨트린 작품으로 손꼽힌다. ‘비상’은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를 다룬 다큐멘터리. 무명 선수와 새내기 감독으로 구성된, K리그 중하위권에 맴돌던 팀이 2005년 리그 통합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을 밀착 조명했다. 스포츠영화는 극영화도 고전하는 극장가에서 다큐로 호응을 얻어 더욱 의미가 깊다.
‘비상’의 비상은 사실 기적에 가깝다. 사전제작에서 개봉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을 또 다른 다큐로 만들어도 될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상’(제작 이모션픽쳐스)의 모태는 ‘충칭의 별’. 중국 프로리그에서 명성을 날린 이장수 감독을 소재로 한 극영화다. 당시 임감독은 이 영화 제작에 관한 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맡아 FC 서울로 자리를 옮긴 이감독을 밀착취재했다. 영화제작이 무산된 뒤 홀로 K리그를 다룬 다큐영화를 기획했다. 이즈음 포착된 팀이 인천. 스포츠신문 친구들의 “인천 유나이티드 찍어, 거기 골 때려”라는 말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맨발의 영광’
문제는 제작비. 스포츠 소재, K리그 하위팀, 다큐 등을 이유로 외면받아 임감독은 전세방을 뺀 돈으로 제작에 들어갔다. 인건비, 장비 대여비 등은 후불제로 했다. 늘 돈에 쪼들려 8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경기 장면을 찍을 때에는 억대 카메라는 꿈도 못꾸고 700만원짜리 저가품을 사용해야 했다. 1년 6개월간 선수단과 동고동락하면서 1시간짜리 테이프 600여개 분량을 찍었고, 6개월여 후반작업을 하는 동안 하드디스크를 5번이나 날리는 상황을 맞기도 했으며, 돈을 못 받은 업체에서 장비를 회수한 뒤 데이터를 지워버리겠다고 한 사태는 통사정을 한 끝에 모면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느라 월드컵 때 개봉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개봉 과정도 난산이었다. 사운드·색보정 등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임감독은 돈을 받지 못한 스태프와 장비 대여업체 관계자들에게 편집본을 보여준 뒤 개봉 여부를 물었다. 이같은 우여곡절을 치른 뒤 2006년 12월14일 9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3만9072명(영화진흥위원회 기준)이 관람해 다큐 최고 흥행기록을 수립했다. 그럼에도 임감독은 빚을 못 갚고 있다. 제작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지만 돈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제작사가 소유, 해외 영화제에 출품도 못하고 있다.
# 살수차·소방차 동원해 수중전 촬영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는 몇 편에 지나지 않는다. ‘비상’ 외 ‘보리울의 여름’(2003) ‘교도소 월드컵’(2001) ‘골목대장’(1978) ‘모정’(1972) ‘맨발의 영광’(1968) 등이다.
이 가운데 김수용 감독의 ‘맨발의 영광’은 국내 축구영화 효시로 손꼽힌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의 학생들이 새끼를 말아 만든 공으로 축구를 연마, 전국대회를 제패한 실화를 소재로 했다. 신영균씨가 지도교사, 윤정희씨가 보모, 중견 탤런트로 활동하는 김천만씨 등이 선수로 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장덕진 대한축구협회장에게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참고로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에 따르면 야구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사나이의 눈물’(1963), 농구영화는 정진우 감독의 ‘섬개구리 만세’(1972), 배구영화는 황동주 감독의 ‘가을장미’(1986)가 효시로 손꼽힌다.
권영순 감독의 ‘모정’은 박스컵(박정희대통령컵) 개최에 맞춰 기획, 국가대표 선수를 키워낸 홀어머니의 모성을 그렸다. 가수 남진씨가 축구선수, 황정순씨가 어머니로 출연했다. 박철수 감독의 ‘골목대장’은 차범근 선수가 인기를 끌면서 골목 축구가 유행하는 점과 세계아동의해에 맞춰 제작됐다. 교사 출신인 박감독의 데뷔작으로 어린이 팀과 노인 팀의 대결을 통해 세대간 소통과 희망을 역설했다.
‘보리울의 여름’
방성웅 감독의 ‘교도소 월드컵’도 희망을 그렸다. 방감독의 데뷔작으로 교도소라는 절망의 공간에 수감된 죄수들이 축구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는 과정을 담았다. 방감독이 94년 월드컵 중계를 보다가 착안, 보름 만에 시나리오를 썼지만 7년 뒤에야 완성할 수 있었다. 장진영·조재현 등 출연진은 촬영에 앞서 경기도 양평의 마을회관에서 2개월간 합숙훈련을 했다. 여죄수 팀으로는 한양여대 축구팀이 출연했다. 개봉 이벤트로 주인공을 캐릭터로 한 모바일 게임도 선보였다.
이민용 감독의 ‘보리울의 여름’은 화합을 그렸다. 보리울이라는 한 마을에 있는 성당과 절의 신부와 스님이 각각 지도를 맡은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갈등을 극복, 한팀을 구성해 초등학교 축구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과정을 극화했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서 올로케했다. 남녀 주인공 아역 외 대부분의 아역을 현지 마을에서 캐스팅했다. 임감독과 이미례 감독의 아들, 영화배우 김부선씨의 딸도 출연했다. 김제의 중앙초등학교 팀이 마을 아이들 팀의 맞수로 출연했다. 성당·절팀의 수중전은 살수차와 소방차가 비를 뿌리는 가운데 촬영했다. 물이 모자라 초등학교 앞 시냇가의 물을 끌어다 써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