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사상 다섯번째 긴 제목 “느낌 좋으면 OK”
최장제목 27자…두세자 제목 영화, 흥행성공 많아
‘다찌마와 리~’(감독 류승완)의 한 장면<사진 상단>. 류 감독은 제목을 단숨에 짓는다. 10편의 장·단편 연출작 가운데 사연 있는 작품은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불과하다. 원래는 ‘마루치 아라치’로 하고 싶었는데 저작권 문제로 쓸 수 없었다. 작은 사진은 ‘어디선가~’ ‘시실리 2㎞’(왼쪽부터).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요즘 각광받고 있는 한국영화다. 제목이 19자다. 역대 한국영화 가운데 다섯 번째로 길다. 제목 짓기는 늘 난산. 어떤 사연이 있을까? 한국영화 제목 이야기.
# 가장 긴 제목은 27자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77년부터 2007년까지 개봉된 한국영화는 총 2429편이다. 이 가운데 제목이 가장 긴 영화 베스트 3은 남기웅 감독의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2000), 강석범 감독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04), 김준 감독의 ‘그리스 로마신화-올림포스 가디언-기간테스 대역습’(05)이다. ‘대학로에서~’는 27자, ‘어디선가~’는 26자, ‘그리스~’는 21자이다.
네번째 작품은 이무영 감독의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02)로 20자이다. 다섯번째 영화는 앞서 밝혔듯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19자이다.
여섯번째(17자)부터 열번째(13자) 영화는 각각 여러 편이다. ‘열 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91)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90)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97)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90)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92) 등 13자 이상인 영화는 2429편 가운데 모두 33편이다.
반면 2429편 중 제목이 한자는 36편, 두자는 233편, 석자는 272편이다. 이 가운데 3대 국제영화제 초청·수상작이나 국내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이 많다. 초청받은 작품은 ‘만다라’(감독 임권택) ‘유리’(〃 양윤호) ‘피막’(〃 이두용) 등 36편이다. 수상작은 ‘밀양’(〃 이창동) ‘빈집’(〃 김기덕) ‘씨받이’(〃 임권택) ‘취화선’(〃 임권택) ‘화엄경’(〃 장선우) 등 5편이다. ‘괴물’(〃 봉준호)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다. 이어 ‘실미도’(〃 강우석) ‘디워’(〃 심형래) ‘친구’(〃 곽경택) ‘타짜’(〃 최동훈)가 흥행 베스트 4·5·6·9위에 올라 있다.
# “밥 사주고 싶어요”
‘다찌마와 리~’ 가제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자크를 채워라’였다. 시나리오 작업 당시 두번 언급되는 대사를 인용,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바꿨다. 제목이 이와 유사한 영화로는 박노식 감독·주연의 ‘악인이여 지옥행 열차를 타라’(77)가 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의 제목은 원래 ‘영화처럼’이었다. 그런 중 남자주인공 홍반장(김주혁)의 캐릭터가 오지랖 넓은 동네 반장이란 데 착안, 만화영화 ‘짱가’ 주제가 가사를 응용한 현 제목이 후보에 올랐다. 제작진은 “어중간할 바에야 차라리 길게 가자, 주인공의 개성을 확실히 전해준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고 변경했다. 제작진은 “극장 매표소에서 긴 제목을 다 대면서 표를 사는 관객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밥이라도 사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 “한방에 팍 오는 거 없을까?”
영화제목은 영화의 얼굴이다. 영화인들은 좋은 제목을 짓기 위해 밤낮 없이 고민을 거듭한다. 일례로 한국영화 흥행 베스트 3위에 올라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의 경우 제목을 확정짓는 데 6개월이 걸렸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강제규 감독이 내놓았다. 이전까지 1순위는 ‘폭풍’이었다. ‘폭풍’은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 작전명이기도 하다.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 스태프들은 이념적이고 고루해 보인다고 반대했다. 설문조사 결과도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강감독은 ‘은행나무 침대’ ‘쉬리’ 때의 경험을 살려 첫 느낌이 좋은 이 제목을 고수했다.
‘시실리 2㎞’(〃 신정원)는 고사를 지내고 촬영을 시작할 때까지 가제가 ‘귀신 때려잡기’였다. 제작사는 100만원을 상금으로 내걸고 영화인들을 상대로 제목을 공모했다. 그럼에도 무릎을 칠 만한 제목이 나오지 않았다. 김형준 대표는 연재중인 스포츠지 컬럼에 제목 때문에 고심하는 심경을 토로했고, 이후 김대표 e메일로 제목이 쇄도했다.
이렇게 모아진 제목이 200여개. ‘시실리 2㎞’는 신감독이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 만든,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란 의미의 ‘시실리’(時失里)와 마을 아줌마로 나온 배우 박명신이 낸 ‘○○마을 2㎞’를 조합한 것. 주인공 임창정의 제안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촬영장에선 “3명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자” “전액 회식비로 기부하라고 하자” 등 상금의 향배를 놓고 즐거운 논란이 일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