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파일]감독, 그 뒤안길](http://images.khan.co.kr/article/2007/01/31/6a0189d.jpg)
영화감독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감독이 되는 것은 물론 감독으로 살아가는 것 또한 여간 힘들지 않다. 오는 8일 개봉되는 ‘바람피기 좋은 날’의 각본·연출을 맡은 장문일 감독의 경우만 봐도 영화감독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장감독은 홍익대 동양화과 82학번이다. 재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그는 4학년 때 제적된 뒤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민중영화 단체 ‘장산곶매’에서 만든 ‘파업전야’(1990)를 본 게 뒤늦게 영화를 만들자고 결심한 동기가 됐다.
그는 장산곶매에서 ‘닫힌 교문을 열며’(1991)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그들도 우리처럼’(1990) ‘베를린 리포트’(1991) 등 사회성 짙은 영화로 각광받고 있던 서울대 미대 출신의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로 충무로에 입문했다. ‘그섬에 가고 싶다’(1993)에서 연출수업을 받은 뒤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씻김’(1995) ‘꽃잎’(1996) 등의 조감독을 했다. ‘꽃잎’은 각본 작업도 했다.
‘꽃잎’ 이후 그는 감독 데뷔 작업에 들어갔다. 데뷔작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코미디를 비롯해 멜로와 공포를 접목한 작품 등을 준비했다. 죽음과 코미디를 접목한 저예산 영화 ‘행복한 장의사’(1999)를 각본·연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2000년 1월8일에 개봉, 전국에서 약 30만명이 관람했고 제24회 카이로국제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몬트리올·벤쿠버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받았다.
그가 데뷔하는 데 걸린 시간은 충무로에 뛰어든 지 약 10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랜 세월을 보낸 뒤 데뷔한 감독들도 적지 않다. 일례로 김경형 감독은 충무로에 나온 지 15년 만에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이민용 감독은 13년 만에 ‘개같은 날의 오후’를 선보였다.
영화감독은 데뷔하는 것만 힘든 게 아니다. 성공적으로 데뷔, 두번째 영화 작업을 낙관했던 장감독이 ‘바람피기 좋은 날’을 내놓은 데에는 8년이 걸렸다. ‘사랑하기 좋은 날’(1995)의 권칠인 감독과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1997)의 구성주 감독도 두번째 영화 ‘싱글즈’와 ‘엄마’를 내놓는 데 각각 8년이 걸렸다. ‘사방지’(1988)로 데뷔한 송경식 감독은 14년 만인 2002년에야 두번째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선보였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다. 2004년에 시작, 완성하는 데 3년6개월이 걸렸다. 노출 수위가 현재의 영화보다 훨씬 강해 캐스팅이 벽에 부딪치면서 닻을 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년여 동안 극중 계절을 바꿔가며 수정을 거듭했지만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노출을 순화하고, 드라마를 코미디로 풀어내면서 액션도 가미하고, 김혜수·윤진서·이종혁·이민기 등을 캐스팅해 현재의 제작사(아이필름)에서 1년6개월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장감독은 자신에 대해 “영화폐인”이라고 했다. “영화가 좋고 영화 외의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꿈을 안고 영화계에 뛰어들었다가 데뷔도 못하고 전업한 이들이 수없이 많고 그들 대부분이 영화를 만들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아카데미 2기 출신인 민병관씨는 데뷔도 못하고 40편의 시나리오를 남긴 채 오랜 투병 끝에 2003년 타계했다. 그런가 하면 김수용 감독은 109편, 고영남 감독은 107편, 남기남 감독은 106편을 연출했다. 임권택 감독은 100번째 작품 ‘천년학’을 찍고 있다. 장감독 등 감독들의 꿈은 이들을 닮는 것이다. 현재의 영화가 마지막 연출작이 아니기를, 줄기차게 작품을 연출해 관객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배장수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