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동네 사람 같은 배우를 찾아라.’ 영화 ‘밀양’의 이창동 감독과 정승구 조감독 등은 이를 위해 부산·대구·울산·마산 등지에서 오디션을 가졌다. 촬영을 앞두고 4개월 동안 오디션을 진행, 약 4000명 가운데 100여명의 조·단역 밀양 주민들을 선발했다.
이들 가운데 화제의 인물은 촬영 당시 ‘울산 형님들’로 불린 오만석·이윤희·김종수·김영삼씨다. 만석씨는 신애(전도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 윤희씨는 약국을 하는 장로, 종수씨는 종찬(송강호)의 친구인 부동산중개소 사장, 영삼씨는 종찬의 카센터에 자주 들르는 후배로 나왔다.
만석씨는 울산 북구 문화회관의 공연기획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다. 극단 ‘문화텃밭’의 대표이기도 하다. 윤희씨는 울산에서 연극을 했던 문방구점 사장이다.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던 그는 전도연과 정사 장면을 찍은 뒤 “더 이상 교육사업에 종사할 수 없겠다”며 최근 막창집을 개업했다. 종수씨는 울산 KBS의 MC이자 연극 배우·연출가다. 영삼씨는 울산 북구청 홍보과에 근무하는 연극배우다.
김명희·김구·박지영·김희정씨 등도 눈길을 끈다. 이들은 실제로 밀양 주민이다. 특히 동사무소 직원으로 나온 김명희·김구씨는 삼문동사무소 현 공무원이고, 미용사와 다방 아가씨로 출연한 지영씨와 희정씨는 실제로 미용실과 다방에 근무하고 있다.
이들 외 기도회를 주관하는 목사도 실제 목사다. 오디션을 통해 뽑으려다가 포기, 실제 목사를 섭외하던 중 만난 대구 주현교회의 임광명 목사다. 다른 배역과 달리 임목사는 시나리오를 다 읽고 출연을 승낙했다.
이광곤·박현배씨도 밀양 주민이다. 광곤씨는 택시기사, 현배씨는 트럭기사로 나왔다. 광곤씨는 부동산업을 하고 있고, 현배씨는 밀양의 극단 ‘마루’ 대표이다. 이처럼 ‘밀양’에 주민으로 나온 이들은 연기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이거나 관록 있는 연극배우다.
연기가 처음인 대표적인 인물은 선정엽군과 송미림양이다. 정엽군은 신애의 아들 준, 미림양은 준을 유괴·살인한 웅변학원장(조영진)의 딸 정아로 출연했다. 캐스팅 당시 제작진이 가장 고역을 치른 배역이다.
정엽군은 숱한 오디션에 실패한 뒤 무작정 찾아간 유치원에서 찾아냈다. “앞으로 배우를 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때 표정을 높이 샀다.
미림양도 가까스로 발굴했다. 대대적인 오디션 때 적임자를 찾지 못한 이감독은 정아가 소년원에서 나온 뒤 미용실에 취직, 신애의 머리를 만지는 걸 감안해 실업계 학교를 중심으로 다시 캐스팅에 나섰다. 그럼에도 적임자를 찾지 못했고, 양산의 한 중학교에서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미림양을 발견한 것.
오랜 강행군에 지쳐 있던 연출부는 ‘아니, 저 아이의 어디가 그렇게 특별해서 그 많은 아이들을 마다한 거야?’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감독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 아이, 감정이 동하면 코끝이 빨개지더라”였다.
김미향·이종욱·박상규·김혜정·김미경씨 등은 지방에서 유명한 연극배우다. 미향씨는 신애에게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도하는 집사, 종욱씨는 호프집 종업원, 상규씨는 신애의 피아노학원생 아버지, 혜정씨는 상가 아줌마, 미경씨는 양장점 주인 역을 맡았다. 이들 가운데 미향씨는 이창동 감독이 대구에서 연극을 할 때부터 활동한 베테랑이다.
연극배우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조영진·이성민씨다. 영진씨는 영화 초반에 충격적인 사건을 저지르는 웅변학원장으로, 성민씨는 주방장으로 나왔다. 부산 출신인 영진씨는 동아연극상 연기상(2003) 등을 수상한 실력파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박정희 대통령으로 출연한 바 있다. 성민씨는 대구와 서울에서 활동해온 연극배우로 영화 ‘비단구두’에 주인공 사채업자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 눈길을 끄는 배우로는 장혜진·홍정혜·박명신씨 등이 있다. 젊은 신자로 나온 혜진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으로 ‘박하사탕’ 오디션에 떨어진 뒤 결혼, 연극계를 떠났다가 이번에 출연하면서 컴백했다. 의사로 등장하는 정혜씨는 약대와 연극원을 졸업한 배우로 현업은 약사다. 최근 영화사를 창립했다. 전도사로 나온 명신씨도 약대 출신 연극배우다.
“저것 봐, 저런 건 (전문)배우들이 절대로 할 수 없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멋진 배우들이 여기에 다 숨어 있었나”…. ‘밀양’ 촬영 당시 이감독이 곧잘 했던 말이다. 이감독의 말처럼 신애와 종찬의 주변인으로 나온 스크린 비전문 배우들은 남다른 실력과 열정을 발휘, ‘밀양’을 빛내는 햇볕이 됐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