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부·자’(강남·부동산·자산가).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에 이어 세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신조어다. 부동산 거부들이 주축을 이룬 현 정부의 내각을 빗댄 유행어다. 한국영화 가운데 부동산 투기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알아본다.
# 복부인, ‘복부인’
부동산 투기·사기가 극성인 한국에서 이를 소재로 다룬 영화는 많지 않다. 임권택 감독의 ‘복부인’이 대표적이다. |자료제공 한국영상자료원
‘BBN’. ‘부동산 부자 내각’을 뜻한다. 일례로 사퇴한 여성부 장관 후보는 장남과 함께 전국에 40건의 부동산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투기 의혹에 대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야당에선 이를 놓고 “여성부 장관이 아니라 부동산 장관이거나 전국 복부인 대표를 보는 것 같다”고 “자연을 사랑하는 박 내정자는 자연인으로 돌아가라”고 논평했다.
한국영화 가운데 복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복부인’(제작 세경흥업)이 대표적이다. ‘피막’ ‘연산군’ ‘아다다’ 등의 각본가로 유명한, 훗날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이덕화) 수상작 ‘살어리랏다’를 연출한 윤삼육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고, 한혜숙·박원숙·김애경 등이 복부인으로 출연했다. 1980년 8월15일에 개봉됐다.
‘복부인’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동시대의 사회현상에 대해 드러내 놓고 비판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2003년에 펴낸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현문서가)에서 임감독은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재를 만나 호기심이 생기면서 그 전과 달리 작품의 완성도를 가리지 않고 한번 해보자 하고 적극적으로 덤벼들게 된 거”라고 밝혔다.
생활비 때문에 남편과 입씨름을 하던 한여사는 아파트 입주 청약신청에 당첨돼 하루아침에 500만원을 번다. 한여사는 이를 계기로 복부인이 된다. 아파트 거래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복부인들과 함께 땅투기에 나선다. 토지사기단과 연합해 거액을 벌고 외간 남자들과 어울려 향락에 취한다. 토지사기단의 악질적 수법에 재산을 몽땅 빼앗기고 실성할 즈음 경찰에 검거된다.
그런데 이들이 조사를 받을 때 이들의 남편들도 잡혀와 있다. 거액을 놓고 화투판을 벌이다가 경찰에 의해 검거된 것이다. 영화는 이들 부부들이 설전을 벌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아니, 이 남자가 내가 벌어온 돈으로 도박을 하다니….” “네가 가정을 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이 꼴까지 온 것 아냐?”
임감독은 한여사가 아파트 투기 현장을 찾아가는 첫 장면을 당시 한국영화에서는 흔치 않은 들고찍기(Hand Held)로 담았다. 엑스트라들 사이를 누비면서, 다큐멘터리처럼. 위의 책에서 임감독은 “뭔가 뉴스처럼 그런 현장 분위기를 잡아내서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런 거 말고는 앵글 자체가 안정감을 가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정성일씨는 “이 시기의 영화들과 달리 ‘복부인’은 아주 빠르게 전개되고 임감독은 앞뒤 영화들이 미장센 중심인 것에 반해 ‘복부인’은 몽타주 중심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 ‘똑바로 살아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서 부동산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22편이 나온다.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1998) ‘돈아 돈아 돈아’(1991)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 등이다. 22편에 속하지 않는 작품으로 ‘똑바로 살아라’(1997) 등이 있다.
강우석 감독의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은 법정 코미디다. 한 주부가 남편을 명퇴시킨 기업을 상대로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렸다. 문제의 기업은 부동산 투기와 비자금 조성으로 덩치를 키워왔다. 황신혜·심혜진·안성기·문성근 등이 호흡을 맞췄다.
유진선 감독의 ‘돈아 돈아 돈아’는 강철수씨의 만화가 원작이다. 땅투기로 떼돈을 번 졸부의 아들이 치르는 인생유전을 담았다. 아버지의 돈으로 쾌락을 좇던 청년이 빈털터리가 된 뒤 돈의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을 통해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했다. 김상중·김혜란·노경주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이원세 감독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보상책으로 받은 주택분양권을 부동산 투기꾼에게 빼앗긴 한 집안의 암울한 삶을 조명했다. 전양자·안성기·김추련·금보라 등이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원작이 조세희씨의 동명 소설. 검열이 극심했던 시절이어서 영화와 원작은 많은 부분이 다르다. 이감독은 이태원을 배경으로 미군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곡절 많은 삶을 담은 ‘여왕벌’(1985)을 마지막으로 도미, 한국영화계를 등지고 말았다.
‘똑바로 살아라’(1997)는 이와 달리 고위 공무원과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사기꾼 일당이 노리는 먹잇감이 바로 부정부패를 일삼는 고위층이 실명을 숨기는 수법으로 보유하고 있는 빌딩과 검은 돈이다. 영화는 해커 등을 동원한 사기꾼들의 행각에 고위층이 줄줄이 걸려들자 검찰이 미녀 경찰을 투입해 수사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엮었다. 오지명·김갑수·박중훈·명계남 등이 함께했고 이상우 감독이 연출했다. 이감독은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노근리 사건을 영상화한 ‘작은 연못’(2006)을 연출한 이상우 감독과 이름이 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원래 세금 문제를 다룰 계획이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진 뒤 관계 기관에서 영화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사기꾼들의 이야기로 변경됐다. 당시 이 영화 홍보마케팅을 맡았던 한 관계자는 “세트까지 다 지었는데 내용이 외부로 알려진 뒤 관계 기관에서 두고 보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시나리오를 급히 바꿨다”고 털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