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방비도시’의 삼성파(사진). 이상기 감독은 서울 남대문경찰서 오연수 경위의 도움을 받아 소매치기 조직과 그들의 범죄현장을 실감나게 영상화했다.
‘가면’에 이어 ‘무방비도시’가 10일 개봉된다. ‘가면’은 연쇄살인범을, ‘무방비도시’는 소매치기조직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국내 형사영화 화제작으로는 ‘투캅스’ ‘인정사정 볼것 없다’ ‘살인의 추억’ ‘와일드 카드’ ‘공공의 적’ 등이 있다.
# 실제 형사, 자문으로 참여
‘무방비도시’ 엔드 크레디트(End Credit)에는 실제 형사들이 자문으로 등장한다. 소매치기 자문으로 서울 남대문경찰서 강력3반의 오연수 경위, 광역수사대 자문으로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3반의 이교석 경위와 마약수사대의 홍창화 경장이다. 이처럼 실제 형사가 영화 스태프의 일원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오연수 반장과 홍창화 경장은 등장인물 이름으로도 차용됐다.
‘무방비도시’는 ‘리얼 소매치기 범죄액션’을 표방한 작품이다. 손예진이 소매치기 삼성파 사장 백장미, 김명민이 광역수사대원으로 일전을 벌였다. 김해숙·손병호·심지호·김병옥 등이 함께했다. 네오 리얼리즘 서막을 알린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무방비도시’(1946)와 비교된다.
이상기 감독은 실감나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1년여 동안 광역수사대를 취재하고 대원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특히 시나리오 구상 단계부터 촬영을 마칠 때까지 ‘소매치기 전담형사 1호’라고 불리는 오연수 반장의 도움을 받았다.
이에 따라 극중에는 소매치기 조직원들과 그들의 수법이 실감나게 나온다. 소매치기는 단독범들이 아니다. ‘사장’(조직 관리자)을 비롯해 ‘기계’(직접 지갑을 턺) ‘안테나’(범행 대상을 정하거나 망을 봄) ‘바람’(범행 대상의 시선을 분산시킴) 등으로 구성,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이처럼 3~5명이 한 팀을 이뤄 ‘바닥치기’(핸드백이나 가방의 지퍼를 열거나 필-면도날을 개조해 만든 소매치기 도구-로 째 금품을 턺) ‘올려차기’(버스나 지하철에 승차하려는 승객의 주의를 분산시켜 가방 속 금품을 빼냄) ‘안창따기’ 혹은 ‘벙카치기’(양복 안감을 ‘ㄴ’자로 가르고 지갑을 가로챔) ‘굴레따기’(상대의 주의를 분산시켜 목걸이 등을 끊어감) 등의 수법을 사용한다.
# 실제 형사, 극중 인물 설정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것 없다’(1999)는 신출귀몰한 살인범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액션과 코미디를 엮은 드라마를 감독 특유의 형식미와 영상미로 극화, ‘90년대 걸작’으로 각광받았다.
이 영화는 또 다른 특징은 주요 등장 인물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점이다. 이감독은 1년 정도 자료를 수집하고 1996년 말 석 달 동안은 인천 서부경찰서에 매일 출근, 강력반 형사들과 동고동락한 끝에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정했다. 수더분하고 우직한 우형사(박중훈)는 제작 당시 박재인 경장, 김형사(장동건)는 김동석 경장, 강력반장(기주봉)은 우준환 경위를 차용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장성민(안성기)의 신출귀몰한 행각은 시나리오작업 당시 탈옥했다가 검거된 신창원을 모델로 삼았다. 대담하게 대낮에 살인을 하고, 변장에 능란하고, 몇 억원이 든 돈가방을 들고 다니고, 여성을 이용해 은신한 등이 신창원의 행각에서 따온 것이다. 장성민의 애인 김주연(최지우)의 집도 이감독이 형사들과 함께 3일 동안 잠복근무를 했던 실제 공간을 그대로 옮겨 왔다. 박중훈은 촬영에 앞서 박경장과 1주일을 함께 지내면서 특이한 습관이나 행동·말씨·옷차림 등을 관찰했다. 이감독은 실제 형사들을 엔드 크레디트의 스페셜 생스(Special thanks)에 올렸다. ‘인정사정 볼것 없다’는 1965년 이신명 감독이 동명 갱스터로 제작한 바 있다.
# 형사영화, 버디무비 인기
형사영화 가운데에는 이른바 버디무비(대조적인 두 남녀가 주인공)가 많다. ‘투캅스’(감독 강우석) ‘살인의 추억’(봉준호) ‘와일드 카드’(김유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형사영화는 1980년대 이전에는 제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영화연구가 정종화씨(영화정보센터 대표)는 “일제시대 영향으로 형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 흥행이 안 된다는 속설이 팽배했으며, 군사정권 아래에서 국가 공무원인 형사를 비하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 등 표현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대표에 따르면 형사가 등장하는 최초의 우리 영화는 1958년작 ‘두 남매’(홍일명)다. 암흑가 두목인 오빠와 사랑의 아픔을 겪는 여동생, 친구인 두목을 체포해야 하는 형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형사 역은 박노식씨 등 액션배우들 차지였다. 이런 가운데 김승호·배삼룡·루비나씨도 형사 역을 맡았다. ‘마부’ 등에서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으로 서민의 애환을 대변해왔던 김승호씨의 형사영화 데뷔작은 68년작 ‘장군의 수염’(이성구)이다. 의문사한 사진기자의 사인을 규명하는 형사로 출연한 그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타계했다. 코미디언 배삼룡씨는 74년 ‘형사 배삼룡’(김기), 패션모델 루비나씨는 75년 ‘여자형사 마리’(이형표)에서 타이틀롤을 맡았다. 배삼룡씨는 코미디언 형사 1호, 루비나씨는 여형사 1호를 기록했다.
형사영화 가운데 ‘특별수사본부…’는 시리즈로 5편이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원세 감독이 73년부터 75년까지 ‘…배태옥사건’ ‘…김수임의 일생’ ‘…외팔이 김종원’을, 설태호 감독이 73년 ‘…여대생 이난희사건’과 ‘…기생 김소산’을 연출했다.
〈배장수 선임기자 came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