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전남 구례군 산동 ‘산수유 봄마중’](http://images.khan.co.kr/article/2006/03/08/6a0982a.jpg)
매화가 꽃잎을 채 떨구기도 전에 성급한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렸다. 꽃샘추위가 제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 법. 남도에 봄이 찾아왔다. 샛노란 꽃술을 수줍은 듯 살포시 내민 산수유가 지리산 끝자락을 황금빛으로 서서히 물들이고 있다. 산수유는 3월 중순부터 만개하기 시작해 하순에 절정을 이루는 ‘봄의 전령사’다. 춘심(春心)이 발동하는 3월, 전남 구례군 산동면으로 봄 마중을 떠난다.
지리산 기슭에 위치한 산동면은 국내 최대의 산수유 자생 군락지다. 전국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산수유가 이곳 48개 마을에서 생산된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지명과 관련된 유래가 전해져 내려오는 법이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옛날 중국 산둥성(山東省)에 살던 처녀가 지리산으로 시집올 때 산수유나무를 가져다 심었다고 해서 ‘산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산동면에서도 가장 산수유가 많은 곳은 만복대 끝자락에 자리한 상위마을과 반곡마을이다. 이중 상위마을은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산수유나무가 지천이다.
산동면 일대에 산수유가 많은 것은 타고난 지리적 조건 때문이다. 특히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일교차가 커야 하고, 물이 맑아야 한다. 여기에 모래와 진흙이 적당히 섞인 ‘사질양토’가 필수다.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곳이 바로 산동이다.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산수유꽃 축제’도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지리산온천관광단지 일원에서 25일부터 4월2일까지 9일 동안 펼쳐지는 올해 축제는 관광객 체험행사를 대폭 늘렸다. 특히 ‘산수유나무 분양’ 이벤트는 1만원을 내면 산수유나무를 분양받을 수 있고, 10월에 열매도 채취할 수 있단다.
상위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지리산온천을 거쳐야 한다. 지리산온천은 구례읍에서 남원방향으로 19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이정표가 나온다. 입구에 들어서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산수유나무가 도열해 마중을 나온다. 투박한 가지에 촘촘히 매달린 노란꽃은 겨울 끝의 황량함을 단숨에 바꿔놓을 기세다.
지리산온천에서 상위마을로 가기 전 왼편 샛길로 들어서면 반곡마을이다. 만복대 끝자락 계곡을 끼고 있는 이곳은 평상처럼 펼쳐진 널따란 바위 위로 서시천이 흐르고, 가지마다 노랗게 물들은 산수유나무가 사방을 둘러싸 운치를 더해 준다. 게다가 지난해 수확하지 않고 그대로 둔 산수유 열매가 이제 막 봉오리를 터트린 산수유꽃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마을로 들어서면 계곡과 담장을 따라 고개를 빠끔히 내민 노란 산수유꽃이 외지인을 반긴다. 마을 곳곳에는 수령이 수백년된 산수유나무가 숱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다.
산수유꽃의 진면목은 상위마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알 수 있다. 상위마을은 반곡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다. 가까운 거리이니 고즈넉한 시골 들녘을 벗삼아 발품을 파는 게 좋다. 상위마을 한쪽에 마련된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산 밑에 나지막이 엎드려 인기척을 찾을 수 없다. 만복대 계곡을 지나온 한줄기 바람에 몸을 맡긴 노란 꽃망울이 잔잔한 물결만 일으킬 뿐이다.
주차장에서 계곡을 따라 마을 한바퀴를 돌아오는 코스는 산수유꽃 감상의 백미다. 옛 돌담 사이로 내민 노란 꽃망울은 주변 경관을 압도하지 않고 숨죽여 균형을 맞추니 그 모양새가 보는 이로 하여금 한동안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구름 밖에 길은 삼십리/그리워서 눈 감으면/산수유꽃 섧게 피는 길 칠십리.’
곽재구 시인의 시 ‘산수유꽃 필 무렵’의 한 대목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산수유가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이 핀 길이 떠오른다고 했다. 산수유는 곧 그리움을 대변하는 대상이다. 봄이면 황홀한 꽃을 세상에 내밀고 10월에 빨간 열매를 맺는 산수유. 때문에 가을이면 산수유 군락지는 온통 루비색 보석을 점점이 박아놓은 듯 장관을 이룬다. 봄부터 사랑하는 누군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쌓여 가을쯤 그리움으로 온몸이 채워졌을 때 붉게, 그리고 아름답게 온통 세상을 물들이는 꽃, 바로 산수유다. 이같은 시상을 품은 시인의 감동스러운 얼굴이 눈에 선하다.
상위마을에서 꽃구경을 마치고 월계순환도로를 타고 반대편으로 내려섰다. 내려오는 길에 시조목이 궁금해 마을 촌로(村老)에게 물었다. 원달리 달전마을과 계척리 계척마을에 각각 수령 1,000년을 넘긴 시조목이 있는데, 세월의 무상함 속에 지금까지도 꽃을 피우고 있단다.
〈구례|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