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강원도 양구‘해안’ 긴장의 땅서 축복을 보다](http://images.khan.co.kr/article/2006/11/22/6a2382a-center.jpg)
강원도 양구군 해안(亥安)은 북동부 철책선 아래 첫 동네다. 남북을 갈라놓은 철책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400여ｍ. ‘안보가 국력’이었던 시절, 마을 주민들조차 출입증 없이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고 맘놓고 큰소리 한번 내지를 수 없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 속에 세상은 변하게 마련. 지구상 유일의 전쟁유산이 지금은 관광상품으로 개발돼 외지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DMZ(비무장지대)를 코앞에 둔 해안은 긴장과 여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민족의 아픔을 간직한 땅. 한국전쟁의 쓰라린 상흔이 안보관광의 소재가 된 역사의 아이러니한 현장이다. 이미 겨울이 내려앉은 해안마을을 찾아 안보관광지를 둘러봤다.
해안은 동면 방향 죽포동 마을 삼거리에서 오른쪽 다리 건너 도솔산(해발 1148ｍ) 돌산령을 거쳐 간다. 1000ｍ 고지의 돌산령은 가파르고 숨 가쁜 고갯길이다. 포장은 잘돼 있지만 산령을 굽이치는 도로의 각도가 대관령이나 한계령 못지않다. 험준한 산악지역의 오지로 가는 길이 순탄하랴마는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오금이 저려올 정도다.
해안은 민통선 내에 위치한 유일한 면(面)이다. 화채를 담는 그릇처럼 생겼다고 해서 일명 ‘펀치볼(punch bowl)’로 불린다. 돌산령 정상에서 바라본 마을은 모양새가 딱 ‘대접’ 같다.
이른 아침, 나지막이 깔린 운무를 발아래 두고 마을로 내려서니 광활한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첩첩산중의 해발 500ｍ 고지에 이만한 평지가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금강산 자락의 가칠봉(1242ｍ), 대암산(1304ｍ), 대우산(1179ｍ) 등 1000ｍ 이상의 고지에 둘러싸인 해안은 타원형 모양의 분지다. 범상치 않은 지형을 품은 고장은 으레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풍부한 법. 분지 형성에 대한 주장은 차별침식에 의한 설과 운석이 떨어져 지반이 내려앉았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운석의 파편이 발견되지 않아 침식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명과 관련된 유례도 재미있다. 그 옛날 바다해(海)를 한자 명칭으로 사용한 이곳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한 스님이 뱀과 상극은 돼지라면서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라는 말에 한자명을 고치고 돼지를 길렀더니 신기하게도 뱀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산지를 제외한 평지에는 뱀이 없다고 하니 낭설은 아닌 듯싶다.
해안 땅의 원래 주인은 북한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남한으로 넘어와 난리통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해 현재는 500여가구 1500여명이 모여 산다.
해안은 한국전쟁 3대 격전지 중 하나. 때문에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북동지역 안보관광의 1번지인 셈이다.
통일관(구 북한관)에 들러 관람신고를 마치고 제4땅굴로 향했다. 1990년 3월에 발견된 땅굴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200ｍ 떨어진 땅굴은 높이와 폭이 각각 1.7ｍ, 길이 2052ｍ로 남으로 침투한 길이가 무려 1028ｍ에 이른다.
남한에서 파놓은 340ｍ 길이의 땅굴을 걸어 들어간 후 투명유리로 덮인 17인승 전동차에 탑승하면 관람과 함께 동행한 군인의 간략한 설명을 듣는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암반수를 맛볼 수 있다.
인근 안보관에는 땅굴 발견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영상실과 북한의 장비와 일상용품을 전시해 놓은 안보교육관 있다. 이 지역 농·특산물도 판매한다.
해안의 주봉인 가칠봉 능선에 자리잡은 을지전망대(1049ｍ)는 통일관에서 10분 거리. 1988년 전경련의 지원을 받아 세워진 전망대는 휴전선 인근 23개 전망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러니 가는 길도 험하다. 포장은 돼 있지만 경사가 워낙 심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전망대 바로 옆에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점등식이 행해지는 해안의 명물 을지십자탑이 우뚝 서 있다.
을지전망대에서 군사분계선과는 불과 1㎞ 거리, 금강산까지는 직선거리로 38㎞다.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좌측 금강산 자락의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탈린고지, 매봉, 운봉, 선녀폭포, 박달봉, 간무봉, 무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박달봉과 간무봉 사이 금강산 봉우리인 비로봉을 비롯해 월출봉, 차일봉, 일출봉 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북녘 땅이 지척이다.
북쪽을 등지고 해안면을 바라보는 경치도 장관이다. 6개의 마을이 하나처럼 보이고, 맞은편 대암산이 뿌리를 뻗듯 마을로 능선을 내린 모습이 이채롭다.
정상에서 내려와 후리로 가면 전쟁기념관을 만난다. 도솔산전투, 펀치볼전투, 피의능선전투 등 양구지역 9개 전투사를 재조명한 곳이다. 당시의 전투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을 20분간 상영해 주고, 500여점의 전쟁유품이 전시돼 있어 아이들에게는 생생한 학습현장이다.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이곳으로 이주해왔다는 통일관장 김종회씨(50)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 분위기가 삼엄했지만 지금은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가 없다”며 “고지대에 위치해 고랭지 채소 농사를 많이 지어 소득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해안마을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길, 무심한 세월의 격변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을마다 들어선 시래기 덕장에는 새들만 넘나들며 기웃거리는 모습이 한적하고 여유롭다.
〈양구|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