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변산 모항, 바다 안고 하룻밤 고향처럼 정겹네](http://images.khan.co.kr/article/2006/12/13/6a1482a-center.jpg)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30번 국도를 따라갔다. 부안에서 새만금, 대항리를 거쳐 채석강, 격포, 모항, 곰소항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변산반도 해안을 한 바퀴 휘두르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노을에 붉게 물든 어촌과 해변, 갯바위와 포구, 바닷물결에 맞춰 출렁이는 연봉들…. 쉴 틈 없이 펼쳐지는 풍광이 아찔하다. 그 길을 따라 모항으로 간다. 격포와 곰소 사이, 모항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어촌마을.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있는 모항에 가고,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현의 시구처럼 모항은 그렇게 외지인을 반기는 곳이다.
모항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남쪽 끄트머리 포구에 둥지를 튼 아담한 어촌이다. 모항으로 가는 30번 해안도로는 서해안에서도 아름답기가 으뜸이다. 왼쪽 산령과 오른쪽 해안을 따라 굽이치는 도로를 내달리면 눈길 주는 곳마다 고즈넉한 포구와 기암절벽, 아늑한 해변이 마술을 부리듯 사라졌다 나타난다.
격포를 지나 모항해수욕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모항이다. 겨울비에 젖은 모항, 칼바람이 매섭다. 솟구치는 파도, 쓸쓸함과 허전함이 거센 바닷바람에 밀려와 한적하기 그지없지만 참을 만큼 호젓해 고향에 온 듯 아련하고 정겹다.
큰길에서 포구로 향하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시골길.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정도의 이 길은 양쪽으로 낮은 집이 정담을 나누듯 마주하고 있어 생각의 저편으로 멀어졌던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모항마을 주민은 60가구 100여명. 어종이 다양하고 풍부한 변산 앞바다를 코앞에 둔 까닭에 주민 대부분은 뱃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고풍스러운 옛 어촌의 모습은 아니지만 정감 어린 주민의 표정에서 삶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낡은 목선이 즐비한 포구를 지나 방파제로 향하니 앙증맞게 생긴 하얀색 등대가 눈길을 끈다. 오른쪽 언덕에는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팽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모진 해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백년을 버텨온 나무는 자태가 반듯하고 장엄하다. 마을 사람조차 수령을 알지 못하는 고목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 등장했던 ‘소원나무’다.
모항 앞바다는 변산반도 내에서도 청정해역을 자랑한다. 철마다 맛볼 수 있는 해산물도 다양하다. 늦겨울부터 초여름까지는 주꾸미철. 주꾸미가 떠난 바다는 대하, 꽃게, 멸치, 갑오징어, 꼴뚜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모항마을 박광진 이장은 “모항은 변산반도에서도 가장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청정해역”이라며 “이곳에서 잡힌 멸치는 전통방식 그대로 멸치젓으로 만들어져 그 맛이 전국 최고”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포구에 겨울이 내려앉은 지금은 어한기다. 그렇다고 섭섭해 할 필요는 없다. 12월까지 잔새우가 나오고, 뱅어도 지금이 제철이다. 뱅어는 죽었을 때 하얗게 변한다 해서 ‘백어(白魚)’라고도 부르는 귀한 물고기. 몸 전체가 하얗고 투명하다. 어린 뱅어를 ‘실치’라 부르는데, 다 큰 놈도 10㎝를 넘지 않는다.
이즈음, 그물에 건져 올려지는 뱅어는 5㎝ 안팎의 어린 것들. 아직은 뼈가 굵지 않아 통째로 먹기에 좋다. 모항 주민들은 채김치에 기름과 깨소금을 곁들여 무쳐 먹기를 즐긴다. 다 큰 뱅어를 꼬챙이에 끼워 산적처럼 구워먹는 맛도 일품이다. 어획량이 많지 않아 값은 약간 비싸지만 멸치와 더불어 칼슘이 풍부해 겨울철 영양보충식으로 그만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지는 모항은 1999년 12월31일 ‘새천년을 잇는 영원의 불씨’를 채화했던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과 일출을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다.
마을 뒤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호랑가시나무가 군락을 이뤄 운치를 더해준다.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되는 나무. 모항 주민들은 호랑가시나무의 가시를 뜯어 명태에 꽃아 걸어두면 악귀를 쫓는다고 믿고 있다.
변산반도는 ‘서해의 진주’. 시인 안도현은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아는 것’이라고 했다. 모항의 빛 고운 낙조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감동이 스멀스멀 몸속으로 기어들어오는 것 같다.
〈부안|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