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정선 소사·연포마을, 강물은 흘러도 시간은 멈췄네](http://images.khan.co.kr/article/2006/12/06/6a0782a-center.jpg)
해가 짧아진 탓에 서둘러 고갯길에 올랐다. 계절이 무색할 만큼 우거진 숲길이다. 고개를 들면 하늘마저 숲에 모습을 감추고 끊어진 듯 이어진 골 깊은 산길은 적막감이 감돈다. 그 길을 따라 달리기를 30여분. 산령을 굽이치는 물레재를 넘어 내려서자 산 밑에 나지막이 엎드린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강원도 정선군 덕천리 소사마을. 동강을 사이에 두고 다리 하나를 건너면 연포마을이다.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절벽 아래 주민들은 담을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산다. 손때가 묻지 않은 계곡과 물, 원시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오지마을. 겨울이 내려앉은 마을은 한적하고 여유로워 단 며칠 만이라도 세상과 절연하고 싶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오대천과 조양강이 합수해 흐르는 동강은 생태계보존지역이다. 천연기념물과 희귀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인 셈. 자연경관 또한 수려해 가수리 느티나무, 정선 고성리산성, 두꺼비바위, 자갈밭과 모래톱 등 빼어난 명승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동강은 그 옛날 정선군 북면 아우라지에서 목재를 뗏목으로 엮어 큰물이 날 때 서울까지 운반하는 물줄기로 이용됐지만 1957년 열차가 들어오면서 기능을 잃자 오지가 됐다.
소사·연포마을은 65㎞에 이르는 동강 줄기의 중간쯤에 놓인 외진 마을.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강줄기를 따라 기암절벽과 봉우리가 파도처럼 이어져 해마다 여름이면 래프팅을 즐기려는 이들의 고무보트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겨울이 내려앉은 이즈음 마을은 무덤처럼 고요하다.
소사마을은 물레재를 거쳐 간다. 물레재는 과거 대홍수가 났을 때 고갯마루에 실을 뽑아내는 물레가 걸려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소사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넓지 않은 농토가 한눈에 봐도 고단한 살림살이를 짐작게 한다. 모질고 척박한 모양새다.
하지만 절집에 온 듯 조용한 산골풍치와 유유히 흐르는 강을 가로지르는 연포교의 낭만적인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어디 그뿐인가. 수억년에 걸쳐 동강이 깎아 놓은 기암절벽은 태곳적 신비감에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이다.
소사마을 식구는 본토박이 이현재씨(66)를 포함해 총 5가구 10여명. 고구마, 감자, 고랭지채소 등 주로 밭농사로 생계를 이어간다. 여느 산골마을에서조차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황토로 지어진 담배건조막. 과거 고추와 담배농사를 많이 한 까닭에 지금까지 남아 운치를 더해준다.
소사마을 건너편은 연포마을. 동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서로 마주보는 형상이다. 과거 두 마을이 왕래하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이용하거나 섶다리를 건넜다.
연포에 있는 고성초등학교 연포분교로 통학하는 아이들은 이 배를 타고 섶다리를 건넜다. 지금은 둘 다 빛바랜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 장마 때마다 불어난 물에 휩쓸려 다리가 없어지는 탓에 몇 해 전 시멘트로 다리를 놨고, 학교는 폐교됐다.
소사마을 강변은 여름에 야영지로 제격이다. 강물이 낮아지는 이즈음엔 물속에 모습을 감췄던 크고 작은 바위가 모습을 드러내 장관을 이룬다. 동강 물줄기를 따라 들어선 기암절벽은 끝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높고 장엄하다.
소사마을 앞 연포교를 지나면 연포마을. 강물이 불면 물에 잠길 듯한 나지막한 연포교에 올라 동강을 내려보니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맑다. 도심에 찌든 혼탁한 마음을 강물에 씻어버리고 연포마을로 향했다.
다리 건너 산허리를 돌자 연포상회라는 간판이 외지인을 반긴다. 거기에는 영화 ‘선생 김봉두’ 촬영지라는 글씨가 정겹게 적혀 있다.
언덕을 오르면 연포분교. 빨간색 슬레이트 지붕을 머리에 얹은 폐교된 분교는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다. 학교를 돌아나가면 과거 떼꾼들이 묵어가던 주막집을 만난다.
연포마을 주민은 분교를 삥 둘러 7가구 15명이 모여 산다. 이행복 할머니를 제외하곤 모두 외지 사람들이다. 그래도 이곳에 터를 잡은 지 20~30년이 훌쩍 넘었으니 준토박이인 셈. 주업은 고추농사고, 한 집만 민박을 친다.
분교 뒤편 작은봉, 큰봉, 칼봉은 연포마을의 명물. 3개의 봉우리가 하도 높아 봉우리 뒤로 달이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해 하루에도 달이 3번 뜨고 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포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 강변을 따라 난 길 끝에는 거북민박이 있다. 포장과 비포장이 교차하는 길은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다. 길은 산허리를 이리저리 굽이치는데, 4륜 구동이 아니면 될 일이 아니다. 물줄기와 나란히 달리는 이 길은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모습으로 거북민박에서 생명을 다 한다.
소사·연포마을로 향하는 길은 외길이다. 때문에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야 한다.
태백산 줄기의 험준한 봉우리에 둘러싸여 고즈넉이 자리한 소사·연포마을은 세상을 잊은 듯 태곳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오지 중 오지다. 이른 아침 물안개 자욱한 날이면 선계에 와 있는 듯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저녁 무렵이면 비 오듯 쏟아지는 별빛에 취해 발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정선|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