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전남 담양, 竹 뻗은 길따라 ‘추억 속으로…’](http://images.khan.co.kr/article/2007/10/24/7j2582a.jpg)
담양은 멋과 맛의 고장이다. 대숲에 들어서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정자에 앉아 댓바람을 맞으면 어느새 시인이 된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이국적 풍취를 자아내고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금성산성에 오르면 눈에 거칠 것이 없다. 게다가 대통밥, 떡갈비, 죽순요리 등 향토음식을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으니 삶의 풍요와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금성산성을 따라 가는 산행은 가을이 무르익어갈 즈음에 더욱 빛을 발한다. 산성에서 바라본 주변 풍광이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기 때문. 등산로가 잘 닦여져 역사공부를 겸한 가족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전남 담양군 금성면과 용면에 걸쳐 조성된 금성산성은 무주의 적상산성, 장성의 입암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으로 꼽힌다. 산성은 전북 순창군 팔덕리 청계리와 도계를 이루는 산성산(해발 603ｍ)에 둘러쳐져 있다. 담양읍에서는 북동쪽으로 6㎞ 거리다.
산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담양읍에서 순창방향으로 조성된 메타세쿼이아 길을 거쳐 간다. 마음을 뺏길 정도로 예쁜 길이다. ‘죽향(竹鄕)’ 담양에 가로수로 대나무가 쓰일 법 한데 메타세쿼이아로 조성했다.
1974년 정부로부터 시범 가로수로 지정된 까닭이다. 30년 넘게 자라 ‘숲’을 이룬 메타세쿼이아는 대나무와 더불어 담양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한때 도로를 내기 위해 베어질 뻔했지만 주민들의 강경한 반대로 지금껏 온전한 모습을 지키고 있다.
24번 국도를 따라가다 추월산 방향으로 틀면 담양온천. 그 옆길로 1㎞를 달리면 등산로 입구다. 주차장 앞에 간이상점이 있지만 주말에만 운영해 장거리 산행에 나서는 이들은 물과 도시락을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산행코스는 크게 3가지. 남문에서 출발해 동문, 북문, 서문, 철마봉을 거쳐 다시 남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5시간짜리다. 또 남문에서 서문, 철마봉, 남문 코스나 남문, 동문, 보국사터에서 다시 남문으로 돌아오는 코스는 1시간30분 걸린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밋밋하다 가파르고, 넓다가도 좁아진다. 30여분쯤 올라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 눈앞에 성채가 나타난다. 외남문(보국문)이다. 성루 아래로 들어서면 견고하게 쌓은 성곽이 능선을 따라 동서로 굽이친다.
외남문을 지나 우측으로 조금 더 오르면 내남문. ‘충용문’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삼한시대에 시작해 고려 중기에 완성된 산성은 전체길이가 7345ｍ. 연대봉, 노적봉, 철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동서남북 빠짐없이 천혜의 장벽을 구축한 ‘천연요새’다. 규모면에서도 놀랍지만 지리적 조건을 절묘하게 이뤄낸 옛 선인의 안목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 때문에 임진왜란 때는 의병의 거점으로 활용됐다고 전해진다. 중앙에 높이 10ｍ의 망루에는 화포가 설치됐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산성 주변에는 높은 산이 없어 조망하기에 거칠 것이 없다. 가슴이 뻥 뚫린다. 발아래 담양호와 평야를 두고 건너편 추월산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멀리 광주 무등산과 광양 백운산도 눈에 아련하다.
성벽 길은 능선을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 산행이 여유롭다. 성곽 중간 중간에는 망대(望臺)가 있어 조망하기 좋고 쉬어갈 수 있다.
산성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각종 시설이 불타 동·서·남·북문의 터만 남았고 한국전쟁 때는 성안에 있던 금성사가 전소돼 이후 복원됐다. 성 안에는 아직도 우물터, 동헌 터, 돌절구 등의 유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주변 역사도 풍부하다. 외남문 오른쪽 계곡인 이천골은 정유재란 때 죽은 조선인과 왜병의 시체 2000구를 계곡에 묻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여기서 20여분 거리에는 기암절벽 아래에 우뚝 서 있는 불상을 볼 수 있다. 국내 유일의 노천법당을 세운 연동사다.
과거 작은 암자였던 연동사는 정유재란 때 이곳에서 죽은 가족 등이 찾아와 향불을 피워 죽은 이들의 넋을 달랬고, 그 행렬이 끊이지 않아 향불의 연기가 구름처럼 깔려 ‘연동사(煙洞寺)’라는 이름을 얻었다.
내친김에 순창까지 갈 판이라면 동문 쪽으로 가야 한다. 강천산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볼거리가 다양하다.
금성산성은 사계절 어느 때 찾아도 좋지만 다음주부터 단풍이 타오른다고 하니 때를 맞춰 가볼 일이다.
〈담양|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