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전남무안 월두마을, 봄을 부르는 ‘초록 갯벌’

입력 : 2007.02.28 21:10

전남 무안의 북쪽 월두마을 갯벌은 겨울에 푸르다. 마치 한여름 잔디밭을 보는 듯 초록의 선명함이 회색빛 갯골을 따라 출렁인다. 서남해안 갯벌에서만 나는 감태(甘苔·가시파래)가 지천인 까닭이다. 감태는 날이 추워지는 12월에 모습을 드러내 수온이 올라가는 3월 초까지 색을 발한다. 다음주면 경칩. 갯벌은 알고 있다. 봄이 저만치 와 있음을. 몸속에 남아 있는 모든 엽록소를 몸 밖으로 밀어낸 탓일까. 이즈음 갯벌은 맑고 청량한 초록 일색이다. 감태가 제 색을 잃으면 겨울은 다 간 것. 봄이 오는 길목에서 겨울을 보낸다.

해제반도 가늘 길, 현경면 용정리 월두마을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어촌이다. 100여호가 바다를 마주하고 옹기종기 모여 산다. 월두(月頭)마을은 동쪽이나 서쪽 어디서 봐도 반달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 우리말로는 ‘달머리 마을’이다.

마을 들머리에는 350년간 해풍을 맞은 곰솔 한 그루가 바다를 굽어보듯 버티고 서 있어 운치가 한결 돋보인다.

마을을 관통하면 바다가 코앞이다. 모래밭 끝자락에 자리한 도당섬에는 높고 푸른 소나무가 빼곡하다. 그 옆이 대섬.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도당섬을 기준으로 왼쪽이 홀통해수욕장이고 오른쪽이 갯벌이다.

3㎞ 길이의 백사장을 갖춘 해수욕장은 뒤편으로 해송이 우거져 여름이면 제법 찾는 이가 많다. 갯벌은 봉오산이 탄도만으로 몸을 감추는 산자락 끝에서 바다를 향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위로 서너 척의 목선이 갯벌에 몸을 기댄 채 물이 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영락없는 어촌의 호젓한 풍광이다.

전남 무안은 해안선을 중심으로 전체 면적의 70% 정도가 황토로 덮여 있어 ‘황토골’이라는 별칭이 붙는다. 이곳 황토는 특히 게르마늄 성분이 많은 게 특징. 흔히 ‘먹는 산소’로 불리는 게르마늄은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에게 약이 된다.

전국 최초로 갯벌습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무안 갯벌은 썰물 때 드러나는 면적도 넓지만 게르마늄 함량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 갯벌을 먹고 감태가 자란다. 잡것이 섞여 있지 않아 맛이 깔끔하고 담백한 무안 감태는 입안에 넣는 순간 부드럽고 향긋한 맛이 일품. 어디 그뿐인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 감태는 이른 아침 햇살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진초록 때깔로 황량한 겨울 갯벌을 수놓아 장관을 이룬다.

해조류는 추운 겨울에 자란다. 여름에 포자로 떠돌다 수온이 내려가는 가을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해 봄에 시든다. 5~10ｍ 수심에서 자라는 감태와 김, 미역이 그렇다.

이 때문에 이즈음 감태는 끝물.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1년 중 감태를 가장 많이 수확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한 해 동안 먹을 ‘양식’을 거둬들여 냉동보관하기 때문이다. 수온이 올라가는 3월 중순이면 때깔은 초록에서 갈색으로 변하고 포자를 방출해 수확하지 않는다. 맛도 떨어진다.

감태는 전복, 해삼, 소라, 성게의 먹잇감. 민물이 들어와 영양이 풍부하고 오염원이 없는 청정갯벌에서만 서식한다. 무안에서도 월두마을 감태를 으뜸으로 쳐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기염류와 비타민이 풍부하고 맛과 향이 독특한 감태는 익혀먹기보다 날로 무쳐 먹어야 제 맛이 난다. 냉동보관한 감태는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향긋한 갯내음이 입맛을 돋워준다. 무안식당 어디서나 감태가 밑반찬으로 나오니 별미 중 별미다.

무안은 감태 말고도 맛난 것이 많다. 세발낙지, 양파한우고기, 사창 돼지짚불구이, 숭어회, 명산 장어가 무안 ‘오미’(五味)로 꼽힌다. 무안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예까지 왔으니 해제반도를 들러봄직하다. 반도 들머리 유월리와 도리포를 잇는 해안도로는 무안의 대표적인 드라이브 코스. 리아스식 해안을 휘돌아 굽이칠 때마다 스치는 풍광이 장관이다.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도리포도 명소 중 하나. 해제반도 서쪽 끝자락 낙조가 아름다운 백학산(해발 124ｍ)은 칠산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가슴이 후련해진다.

상춘객이 몰려들기 전 호젓하기 그지없는 이즈음 무안 땅은 마늘과 양파로 온통 초록이다. 갯벌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에 있건만, 뭍은 이미 봄길로 들어섰다.

〈무안|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